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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봄이여,할아버지의 눈물을 닦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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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환 (동화작가)

아차산에서 문학 강연을 했다. 휴일이라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도 많았고, 강연장에 앉아 있는 사람도 많았다. 숲 속 강연장은 맑고 아름다웠다. 산새들이 짹짹짹 강연을 하면, 나뭇잎들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아픔도 길이 된다'는 주제로 두 시간 동안 강연을 했다. 체 게바라와 호찌민과 간디를 이야기했다. 청각장애를 이겨낸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이야기했고, 조국을 잃고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쇼팽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동화 시장이 안 좋다는 이유로 12번씩이나 출판 거절을 당한 베스트셀러 해리포터를 이야기했고,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조국 아테네가 패하는 아픔이 없었더라면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사유는 깊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유대인이라는 아픔이 없었더라면, 육신의 아픔이 없었더라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지금만큼 걸어오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과 독일 나치의 프랑스 점령이 없었더라면 사르트르의 '자유의 길'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독일 나치에 점령당했을 때 점령군을 위해 노래 불렀다는 이유로 마리아 칼라스가 버림받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세계적인 전설의 디바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아픔은 길이 된다고, 슬픔도 길이 된다고 힘주어 힘주어 말했다. 여러 날 동안 열심히 조사하고 외운 것을 모두 말했다. 어깨에 힘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강대 앞에 서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느릿느릿 내게로 걸어 오셨다. 할아버지는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고맙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요…." 할아버지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셨다. 할아버지 손을 잡아드렸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닦으시며 다시 말하셨다. "실은 저에게도 아픔이 많았습니다.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저는 이렇게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어요. 죽어라 발버둥쳐도 자꾸만 쓰러지는 걸 어쩌겠어요. 나도 그랬고, 내 아들도 그랬어요." 

할아버지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할아버지를 안아드렸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마음이 아팠다. 내가 부끄러웠다. 아픔은 길이 될 수 있다고, 아픔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내가 힘주어 말했을 때, 백발의 왕관을 쓰신 할아버지는 내게 말하셨다. 인생은 그런 게 아니라고,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아픔도 있는 거라고 눈물로 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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