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소망으로 무르익는 봄

첨부 1


- 황형택 목사 (강북제일교회)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천년 동안에'에는 이런 구절 하나가 나온다. "이 세상은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다고 강하게 강하게 바라는 자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어려움이 끼어드는 까닭은, 실은 그들을 위함이다. 너도 그런 인간 중의 한 명이다."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은가? 그런 열망이 삶을 관통하는가? 삶의 언저리부터 꼭대기까지 터져나오는 살고 싶은 용암의 분출구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땅에서 불어오는 허리케인에 맞서보라. 폭풍은 강하게 살아보겠다는 단단한 결심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장한 사람들을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만들기 위한 조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겐지는 겁내지 말고 열심히 살아보라고 말한다. 옛말에도 '夜深星逾輝(야심성유휘):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더욱 빛이 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세상의 가르침을 훌쩍 뛰어 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부드러운 듯 강력한 요구가 그렇다. "소망 중에 즐거워 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수많은 어려움의 터널을 지나면서 '그래 어떻게든 살아야지. 살아봐야지' 정도가 아니다. 

더 거대한 날갯짓으로 환난의 폭풍우 한 가운데를 훨훨 날아가면서 즐거움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기도의 끈을 더욱 동여매는 사람이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계시는 그 분은 소망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을 넘치게 하시는 오직 그 한 분이 우리 인생의 가장 강력한 버팀목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고흐는 '내 그림이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서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게 고통스럽다'고 했다. 카프카는 '소설가란 글이 안 써지는 순간일지라도 책상을 이로 물고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긴장의 줄을 절벽에서 부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당연하다. 어디 그리 쉬운 인생길이 있겠는가? 그러나 결코 착각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봄이 무르익는다. 벚꽃이 춘설처럼 아름답게 떨어진다. 나는 소망의 노래를 뚝뚝 떨어뜨리는 사람이고 싶다. 생명이 무르익는 봄이다. 나는 소망의 하나님으로 무르익는 그리스도인이고 싶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