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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요편지] 축의금 만삼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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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환(동화작가)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거렸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어쓰고 엄마의 등 위에서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삼천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편지를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 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만원짜리 한 장과 천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사과를 왜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깨물어 먹었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가 마음 아파할까 봐, 엄마 등 위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 봐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참아도 참아도 터져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마한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의자가 여덟 개다. 형주네 서점에서 내 책 저자 사인회를 하자고 했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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