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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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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곤 목사 (열린교회)

어느 한 남자가 목회자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목회자가 말했다.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목사님, 제게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문제인가요?”
“제가 제 아내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만큼 당신도 아내를 사랑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많은 남자들의 진짜 문제는 사랑을 ‘느낌’이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사랑을 “이전에 결코 느껴본 적이 없었던 느낌을 갖게 될 때의 느낌”이라 생각한다. 사랑이 느낌 이라면 누군가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적인 사랑은 근본적으로 ‘느낌’이 아니다. 성경적인 사랑은 ‘감정’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말의 품사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명사? 아니면 동사?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명사라고 단정한다.

그렇지 않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동사’이다.
성경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본문이 고린도전서 13장이다.

이방인들조차도 사랑에 대하여 그 정확성과 문학적 탁월함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인정한 말씀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13장4-7)

본문을 통해 ‘사랑’이 왜 동사인지 생각해보자. 먼저 “사랑은 오래참고”에서 ‘오래참고’의 헬라어 단어를 보면 분사형으로 되어있는데, 분사는 그 속성상 동사이다. 
“사랑은 온유하며”에서 ‘온유하며’ 역시 헬라어로 보면 분사형이다. 다른 부분들도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정의하실 때 동사를 사용하셨다. 
동사는 사람이 느끼는 어떤 감정이라기보다는 당신이 행하는 어떤 것임을 말한다. 
동사는 순간적인 감정보다 행동을 결정한다.

사랑이 행하는 어떤 것이라면 누군가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이 정말 가능할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보자.
남편들이 직면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아내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아내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에 남편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5:25)

남편들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는 만큼 자신의 아내를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향한 자신의 큰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3-44)

솔로몬은 그 방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잠25:21)

사랑은 단지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고린도전서13장의 첫 부분을 보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13:1-3)

만일 사랑이 주는 것이라면,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을 먹이고, 자기 생명까지 포기하고도 사랑이 없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정의에서 없는 것이 있다. 동기이다. 
모든 소유를 내어주고 생명까지도 내어준다고 해도 그것이 반대급부로 무엇인가를 얻겠다는 동기에서 나온 행동일 경우는 그것은 성경적인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반대급부로 무엇인가를 얻겠다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그냥 주는 것이다.
진짜 사랑은 보답이 없어도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르다. 
눅10:38-42에 나오는 마르다가 원한 것은 동생 마리아가 도와주는 것이었지만, 마르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이다.
결혼생활에서 사랑이란 보상에 대한 기대없이 성경이 아내에게 필요하다고 말씀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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