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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한말의 독립공채와 21세기의 한국 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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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남 목사(시드니 샬롬장로교회). 

세월이 많이 흘렀나 보다. 세월이란 게 참 이상도 하지, 그 세월이란 것이 물처럼 흘러가는 것인지, 아니면 세월이란 녀석은 그냥 가만히 서 있는데 내가 그 세월이란 경주코스를 열심히 지나가는 것인지? 아무리 살아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그 시간이란 것이다. 지난 세기의 존재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 교수가 언급한대로 시간이란 영원성의 상징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좌우지간 여기서는 시간이란 것이, 아니 세월이란 녀석이 ‘나를 데리고 간다.’라고 표현하겠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이다. 신앙이 없는 분들의 기준에 따르면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신자들이라면 간단하게 답할 수 있겠다. 시간이란 녀석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가고 있다고 말이다. 다시 세월이란 참 이상도 하지, 그 녀석이 우리를 어디론가 자꾸 데리고 가고 있는데 아차! 정신을 놓고 있으면 우리의 피부가 쭈글해 지고, 아차! 정신을 놓고 있으면 지붕에 하얀 꽃을 피워놓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런 정도는 약과다. 세월이란 녀석이 우리를 데리고 좀 따뜻한 양지녘으로 데리고 다닐라치면 이내 우리의 마음은 온통 현란함에 빠지게 되고, 교만해지고, 그곳에 이상한 집착이 생기고, 그래서 바름과 균형을 잃게 되는 수가 많다. 그리고 세월이 좀 더 흐르다 보면 그이 없이는 못살 것 같이 청년의 감정이 시들해 지고, 다시 또 세월이 더 지나고 보면 할멈 없이는 더 못 살어! 하는 실제적인 고백으로 돌아오고. 그러니 세상이란 거이 참 이상하다 어찌 아니 할 것인가?

세월은 그렇게 우리네의 몸과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는데,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 중의 하나가 나라 사랑, 민족 사랑에 대한 마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옛날 학교 다닐 때 우리에게 윤리학을 가르쳤던 선생님은 “나라 사랑, 민족 사랑은 좋지만,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민족이 최고면 다른 민족은 2, 3등 민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모든 민족이 다 존경과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 민족의 구성원들에게는 말입니다”하면서 열변을 토하곤 했다. 

맞는 말이다. 자기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가족을 사랑하겠는가? ‘우리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민족을 사랑해 주겠는가?’하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발상인 것이다. 

근데 요즘에 와서 세상이 조국 대한민국을 보고 있노라면 참 한심스런 생각이 든다. 왜 한국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정치 지향적이며, 권력 지향적인가? 웬 사람들이 다들 저렇게 악다구니 하며 싸우려고만 드는가? 상식이 통하고 균형 잡힌 생각들을 나누고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분위기 보다는 어떻게든 상대를 정하고, 그 상대를 무너뜨리고 하는데 너무 많은 국력이 상실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조국이 잘 살아가야, 해외에 나와 있는 동포들이 힘이 나는데 말이다. 

한국에서는 왜들 그렇게 그들의 위에서 지시하고-물론 임기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다스리는 사람들을 그렇게도 못마땅해 하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권위와 책임에 집중하여 임기 끝에 혹은 나중에 평가받지 못하도록 하는가? 자기네들이 선출을 했고, 선택을 했으면 그가 자기의 임기 중에 나라를 내우외환의 위기로 끌고 가지 않는 한 기회를 주고 일하도록 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25년 전에 뒤늦게 상환한 구한말의 독립공채라는 것이 생각이 났다. 정확히는 상해임시정부가 1930년대와 40년대에 발행한 소위 ‘독립공채’라는 것이다. 말이 독립공채이지 그것은 허울좋은 정치헌금의 일종이었다. 독립공채를 사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금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그 공채가 나중에 좋은 가격으로 상환될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사지 않았다. 아마도 무너져가는 조국의 패망과 70년 후의 독립을 믿음으로 내다본 예레미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상해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공채는 액면가가 10불, 25불, 50불짜리였다. 

당시 그 돈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노예처럼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이나 옥수수 농장에서 12시간씩 일하고 받은 임금이 월 18불 정도였으며 한 달 생계비가 8~10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이민자인 우리의 선배 이민자들은 뼈를 깎는 고생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그 공채를 샀던 것이다. 10불짜리 공채를 사려면 아끼고 아껴서 2달은 모아야 헌금할 수 있는 것이었고, 50불이라도 헌금을 할라치면 근 10달은 그것만을 위해 근검절약 해야 사 보낼 수 있는 그런 액수였다. 

그런 헌금을 받은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이 이봉창의사의 의거와 윤봉창의사의 의거 같은 돈 드는 거사를 지휘할 수 있었을 것이고, 멀리서 자기가 보낸 작지만 피묻은 헌금이 그런 쾌거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을 미국의 신문으로 보며 우리의 이민 선배들은 얼마나 흐뭇해 하고 자랑스러워했는지 아는가? 당시의 한국 이민촌을 찾은 미국기자 하버 존스는 “아마 서방사회에서 조선의 선비정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사람처럼 예의 바른 백성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 이민 선배들의 생활상을 칭찬했었다. 

이렇듯 옛날의 이민자들은 망국의 설움을 씹으며 이국생활에 적응해 갔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했던 애국자들이었다.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들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었고 지도자였다. 근데 한심스럽게도 요즘의 지도자들이나, 이민자들이나 간에 모두가 그 놈의 세월이 우리를 너무 따뜻한 곳으로 인도를 하여 옛적 일을 잊는 것 같다. 한 달에 10불 하는 생활비를 아껴 단절된 나라의 법통을 잇고, 그 정신력으로 살아갔던 우리네 한국 이민자들은 사실 좋은 전통 위에 있는 셈인데, 이제쯤은 정신을 차리고 이민 왔을 때의 초심, 부르심의 초심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육신이 피곤하고 고달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작은 성공에 함몰되어 졸부처럼 놀아나는 초라한 신자본주의의 천박함 만큼은 벗어나 마땅한 권위를 존중해 주고, 함께 건강한 세월을 형성해 갔으면 좋겠다. 깨어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월이란 그 녀석은 우리를 너절해지게 하니까!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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