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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꽃은 홀로 피어도 수줍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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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곤 목사 (열린교회)

열 명이 지지하는 의견을 반대하여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 다수에 동조합니다. 심리학자 애쉬(Asch)는 이것에 대하여 실험했습니다. 실험실에 여섯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사람이 딱 하나 남은 의자에 앉았습니다. 실험자는 기준으로 선을 보여 주고 다른 선이 이 기준선보다 큰가, 작은가 를 말하는 것입니다.

피험자들은 순서대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피험자들이 맞는 답을 동일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실험에서 처음 대답하는 사람이 틀린 답을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 선이 분명 기준보다 큰데 작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도 똑같이 틀린 대답을 하였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대답을 했겠습니까? 다섯 명은 이미 실험하기 전에 공모하고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 번 반복실험을 한 결과 40%가 분명 잘못되었는데도 앞 사람의 의견을 따랐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나 같으면 절대로 그런 식으로 줏대 없이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틀린 대답에 한 번도 편승하지 않은 피험자들은 전체 피험자들 중 25%뿐이었고, 나머지 75%는 두 번 중 한 번, 또는 항상 틀린 대답에 따랐다고 합니다.

분명 자신의 판단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다수에 동조했을까요? 심리학자 켈먼은 첫째, 정보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여러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들의 생각이 옳은 것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추종, 영합. 즉, 부정적 결과를 피하려는 동조 때문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찬미하는 사람처럼 되고 싶은 것과 같은 ‘동일시’ 때문이라고 합니다. 넷째는 전문가의 의사를 따르고 싶은 것과 같은 ‘내부로의 투사’ 등으로 동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규준이나 관습을 무조건 따르는 권위주의적인 사람이 더 동조적이고(크러치 필드),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신감 없는 사람이 더 동조적이라고 합니다(스탱). 만약 중간에 어떤 사람이 정답을 제시하면 동조율은 6%까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세르주 시코티의 “심리실험 150”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분명하게 진리로 믿는다고 해도 다수 앞에 홀로 진리를 주장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비록 홀로 일지라도 진리 앞에 서야 합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 때 대부분의 백성들이 바알신을 숭배했을 때 엘리야는 하나님을 섬기며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죽음 앞에서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24:15)”라고 고백했습니다. 진리는 수에 의해, 지지도에 의해 변경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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