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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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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교회가 가는 곳에 국가가 간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교회의 책임을 다짐하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은 국가 형성의 세포가 되고 국가는 그 개인을 지키고 보호한다. 개인은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울타리 안에 안주하기를 원하지만 때로 거대한 국가권력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제한하고 억압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개인의 집합이 낳은 국가권력은 울타리이기보다는 올무가 되기도 한다.

일찍이 개혁자들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이원화 시켜 나왔다. 이유는 교회가 국가권력을 장악하거나 지배함으로 야기된 온갖 비리와 모순을 경험했기 때문이며 반대로 국가권력에 예속되거나 시녀화함으로 오는 부정적 역할을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교회다울 때 그리고 정신적 등불이 되고 영적 지주가 될 때 역사의 정점에 서게 되는 것이며 제 구실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교회지도자나 구성요원들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제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거나 중요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에 있다. 다시 말하면 그 공동체 속에서 과연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있느냐에 있는 것이다. 1천만 신도라는 계수상의 겉모양이 사회나 역사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냐고 일갈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다’라고 내세우지 못하는 죄스러움을 우리는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 계절이 오면 사돈네 팔촌까지 들먹거리며 저마다 교인임을 자처하고 표를 겨냥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기염을 토하는 국회의원 지망생에게 어느 교회 교인이냐고 물었더니 초등학교 시절에 주일학교에 다녔노라고 대답했다는 해프닝도 있다. 두 세계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면서 시의에 맞는 처세를 구사하려는 설익은 크리스챤들 때문에 기독교의 위상은 말이 아니다.

정교분리의 고전적 원리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정치와 종교는 일정한 간격을 두는 것이 좋다. 구조악을 방치하거나 외면하는 교회의 집단행동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구조악을 방조하고 거드는 것은 더욱 나쁘다.

교회는 권력이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바른 정책을 펼쳐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어야 한다. 교회는 영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국가 위에 존재한다. 국가란 현실 집단이며 세속적 집단이다. 그러나 교회는 영원 집단이며 거룩한 공동체이다.

유신말기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 날 집권당의 지구당 관계자가 지구당대회 개최지를 물색하다가 충신교회가 적합할 것 같기에 찾아왔노라며 장소로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어렵겠다”고 했더니 그는 약간 고압적인 투로 “어렵습니까. 안 됩니까”라고 다그쳐 물었다. 그때 필자는 “안 됩니다”라고 거부했던 일이 있었다. 교회를 전당대회 장소로 생각한 그 발상의 뿌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 가능성을 누가 제공했는가. 그것은 정치와 교회의 관계를 뒤섞어 놓은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국가가 기독교를 박해하면 그 국가는 불행한 국가이다. 기독교가 권력을 장악하면 교회는 타락한다. 교회는 높은 산성이어야 하며 밤바다의 등대여야 한다. 반국가적 행동이나 태도를 지양해야 하는가 하면 교회의 정권 시녀화 역시 철저히 제한되어야 한다. 올바른 국가관의 정립이야 말로 서로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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