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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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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34: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보내소서 한대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가다라 지방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느냐?

 

사람이 귀신이 들리면 어떻게 되느냐? 사람이 귀신이 들려 놓으면,

 

사람이 참 사람 곧, 하나님의 성품의 인격의 사람이 되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싫어하니 교회를 싫어합니다.

 

진리이치의 말씀을 싫어하고, 말씀을 싫어하니 사망계로 들어가서 자기의 비석을 세우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사람이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못하니,(세상을 소원 목적)

 

사람이 굉장히 사나워집니다. 제 눈에, 제 마음에 안 맞으면, 제 뜻에 안 맞으면 동참 협조 참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과 진리이치에 굽힐 줄 모릅니다. 인간 주관성이 팽팽합니다.

 

무덤.

 

무덤은 무엇이냐 하면 무덤은 생명 없는 자들이 가는 곳, 무덤은 활동이 없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이 무덤이 왜 길옆에 있느냐? 이 세상 나그네 된 인간들의 무덤입니다. 아담 하와가 선악과 따먹고 그 곳에 묻힌 무덤인가? 출생을 해서 바다를 건너오다가 풍랑을 만나 물에 빠져 죽은 시체들의 무덤인가? 귀신들린 이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려고 안수하느라고 두드리다 귀신들린 이들에게 맞아 죽은 무덤인가? 어쨌든 사람이 죽은 무덤이지 짐승이 죽은 무덤은 아닙니다.

 

무덤 사이에서 이들이 뭘 하고 있었느냐? 무덤 속의 송장이 누구며, 무슨 일을 얼마나 했으며, 죽은 사람의 이력과 업적을 연구하며, 피는 무슨 형이며 골각은 동양계인가 서양계인가 그것을 연구하느라고 무덤에서 살고 있었느냐, 자기들이 들어갈 무덤을 미리 파고 있었느냐?

 

귀신들린 자들이 뭘 먹고 살았느냐? 때를 알고 자기 집으로 왔다 갔다 하며 음식을 먹지는 아니했을 것 같고, 송장을 뜯어 먹고 살았느냐? 좌우지간 사람이 귀신들려 놓으면 사망계에서 생명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고,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죽는 일, 죽은 일만 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정상적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선악과 따먹은 이후로 모든 인간은 저주를 받아 사망권 안에서 사망적인 일만 한 것이 성경으로 보는 타락적인 인생관입니다.

 

저희는 심히 사나워

 

사람이 귀신이 들리면 진리생명의 말씀, 또는 진리이치를 아주 싫어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의 속에 들어 있는 자기의 정체가 탄로 나기 때문에 진리이치를 아주 싫어합니다.

 

성경구절로만 말하면 귀신이 아주 좋아합니다. 사단 마귀도 성경구절을 이용합니다. 거짓 선생, 거짓 목사, 이단자들, 율법주의자들, 외식운동자들, 구복주의자들, 신비주의자들 얼마든지 성경구절을 인용을 합니다.

 

옳은 진리이치는 인간 타락된 자존심을 지적을 합니다. 이 때 사람의 양심이 두려움을 느끼고, 양심이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어떤 사람은 양심적으로 옳다고 느끼면서도 자기 육신생활, 육신목숨에 위협을 느끼거나 자기에게 인간들로부터 해가 미칠까봐 슬그머니 피해서 그만 달아나 버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무조건 반발입니다. ‘왜 그럴까하고 그 근원을 심사하고, 본질을 심사하고, 성분을 심사하고, 성격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구절을 가지고 자꾸 반발입니다. 성경구절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따다 붙이며 성경구절적으로 자꾸 돌리며 붙이는 것입니다. 구절이 그 장 속에서 어떤 계시성을 깨닫게 하는 것인데 그것은 없고 성경구절에 구절을 자꾸 붙이는 것입니다.

 

성경구절을 자꾸 돌려 붙이면 어떤 신앙이 되느냐? 결국은 바리새인이야! 외식운동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도덕적 종교생활밖에 안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구절로 뭘 말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들어보면 신념적인 신앙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기도가 약해서 응답이 없다느니,

믿음으로 안 해서 응답이 없다느니,

하나님의 뜻은 그 당장에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줄 때까지, 응답이 있을 때까지 구하라느니.

 

뭐가 허점인가? 인간 자기의 타락적이며 자기의 주관적인 뜻이 들어 있고, 진리말씀 바로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지며 살겠다는 것은 없이 현재 자기는 옛 사람이 주격이 되어 기도하는 이 자기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별이 안 되면 사람 골 빼는 짓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나운 신앙성질입니다. 주님의 옳은 진리는 현재 인간 자기 속에 주격이 누군지 그것을 밝혀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은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사망권에서 풀어내어 참 자유를 주려고 오셨는데 자기를 못살게 군다고 성질을 부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귀신이 들려 놓으면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을 하기 되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생각을 하게 되고, 똥고집을 부리고, 타락된 주관성이 안 꺾이려고 그럽니다.

 

무덤사이에서 어떤 신비성을 체험한 사람들은 더 사나워. 진리이치의 깨달음이 아닌 기도하다 음성 들은 것, 환상 본 것, 꿈을 꾼 이런 것이 자기 신앙의 파워가 된 사람일수록 고집이 셉니다.

 

사납다라는 말은 그런 것을 가지고 사람에게 덤빈다는 것입니다. 제 눈에 무슨 이적이 나타났으면 그것 가지고 사람에게 덤빕니다. 현대 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었으면 그것 가지고 사람에게 덤빕니다. 이성철학을 했으면 그것 가지고 사람에게 덤빕니다. 충성봉사 사역을 많이 했으면 그것 가지고 사람에게 덤빕니다. 얼마나 사나운지 인간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은 없어! 이것이 다 사망권 안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자기 무덤 만들고, 자기 기념비 세우느라고 어떻게 사나운지!

 

귀신들린 사람은 사람을 잘 속입니다. 임시성적인 것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사람에게 간사를 떨고 유도를 하고, 영원 궁극적인 실상을 못 보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구절을 가지고 공갈 협박을 하고.

 

세상으로 속화된 교회 안에 귀신들의 난폭성이 많습니다. 타락적 기존적인 성질에다 신비체험이나 하고 현대신학이나 좀 읽었고 세상이 알아주는 학이나 종교적 명예나 더 가졌다면 깨어지기 힘듭니다. 무덤에다 자기 기념비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납고 깡깡한지 사람들이 그것을 깨고 정복을 해 그 길을 통과를 하지를 못 해. 이것이 사납고 난폭한 성질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주님만이 그 난폭한 성질들을 깨고 정복을 하고 쫓아내고 그 길을 통과합니다.

 

주님과 함께 바다를 건너오면서 주님과 대화를 하면서 천국의 비밀들을 알고, 주님을 바로 알고,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이 주님을 바로 알았더라면 그 길을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인데!

 

세상 학은 바다의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과학적인 자연법칙의 조건을 말합니다. 그 이상은 모릅니다.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셨고, 창조주께서 자연법칙을 넣어서 그렇게 되도록 하신 이유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우리의 구원도리를 깨닫게 하시려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들의 활동으로 되는 세상의 환난풍파도 역시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출발하면서부터, 출생하면서부터 주님을 잠재우지 않고 하늘나라의 비밀들을 잘 들었더라면 세상에서 미친듯이 날뛰는 귀신들의 활동의 그 사상들을 가르고 지나갈 수 있었을 터인데 귀신들린 자들이 사망계에다 자기 비석을 세우느라고 그 세력들이 얼마나 강한지!

 

8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사람의 속에서 귀신이 하는 소리입니다.

 

사실 귀신과 예수님과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과는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특별하고도 특수한 관계성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이 설정이 되었고, 기본구원이 있고 성화구원이 있고 누릴 구원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영능의 실력을 위해서 모든 사건 환경을 잡아 돌리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과 우리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데 그러나 귀신은 인간 속에서 인격적 상관관계가 없다고 인격적인 관계성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화된 교회는 주님과 인격적 관계성을 짓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 땅의 것, 물질의 것을 목표로 세워놓고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고 가르치는 것은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없는 소리입니다. 이런 기도, 이런 설교, 이런 집회 이것은 사망계의 일이요, 인간의 기념비를 세우는 일이요, 무덤으로 간 사람들의 일이요, 귀신이 사람을 붙잡고 더욱 힘쓰는 일입니다. 그런 곳에는 귀신이 나가지 않으니 사람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온전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귀신들이 주님을 왜 싫어하느냐?

사람에게 진리로 분별력을 주니까 귀신이 자기가 들통이 나서.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니까.

 

사상과 정신 소원 목적 모든 것을 분별시키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귀신들은 뭘 좋아하는고 하니

세상을 좋아하도록 하는 것.

진리이치의 분별이 없는 일반적인 것을 주면 인간들이 귀신들이 하는 활동을 잘 하기 때문에 매우 좋아합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의 존재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단순히 예수님의 존재성만 알고 딴 짓을 하면 신앙이냐? 주님의 소원 목적성 취미성 지향성 추구성이 무엇이냐? 우리도 닮아야지! 이방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는 것은 악령이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세상과 세상 것을 구하는 것은 성령인가?

 

귀신들린 사람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교훈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8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마침 멀리 돼지 떼가 있었는데 귀신들이 하는 말이 우리를 사람에게서 쫓아내고 싶으시면 저 돼지 속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 귀신들의 활동도 주님의 허락 하에 있습니다.

 

그래, 가라. 돼지에게로!’ 귀신들이 돼지 떼들에게로 들어가니 돼지 떼들이 갑자기 스스로 요동이 일어나고 발작이 일어나는데 엄청난 힘이 솟습니다. 이걸 누가 막느냐? 돼지에게 밟혀 죽으면 순교라고 할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 - 땅의 운동을 하라!

 

십자가상에서 뛰어 내려라’ - 영웅소리를 들어라! 귀신이 들어가면 내리막 운동을 합니다. 그 결과는 빠져 죽는 것입니다. 전부가 하나도 남김 없이 비탈로 내리 달아 물속에서 몰사한 것입니다.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고기 덩어리 살찌우는 목적으로 삽니다. 하는 일이란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자고 살이 디룩디룩 쪄야 값이 나갑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영의 미모성이 지혜 지식적으로 도덕적으로 능력적으로 뛰어나야 존귀해지는데 돼지는 살만 찌면 영광입니다.

 

세상 것이 좋아 세상 것을 먹고 따라가는 교인과 진리의 말씀이 좋아 진리를 먹고 따라가는 성도는 절대로 질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시대에 교회가 세상을 따라간다는 말이냐, 진리를 따라간다는 말이냐? 교회들이 어디에다 값을 많이 매기더냐? 돼지 같은 축복, 돼지 같은 세상의 살을 찌우자면 모두 다 아멘합니다.

 

귀신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돼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돼지 같은 소원 목적으로 살면, 세상 소원 목적적으로 살면 귀신은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운동, 내리막 운동을 하는 것은 무엇이 들어간 증거인가? 돼지를 치던 자들이 귀신들렸던 자의 일과, 돼지 떼들이 몰사한 그 일을 시내로 뛰어 들어가서 모두 알렸습니다.

 

그러니까 온 시내 사람들과 돼지를 치던 자들이 예수님께 어떤 태도로 나오느냐? 예수를 떠나기를 간구합니다. 살찐 돼지, 육 돼지, 돈 돼지가 귀신이 들려 다 죽었으니 어떻게 살아가느냐? 사람이 아니라 돼지를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하여 사람의 온전이 아니라 돼지를 살찌게 키워서 돈을 벌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떠나게 하는 운동을 했습니다.

 

그 동네는 병자가 하나도 없었을까? 전부 다 온전자였을까? 이 사람들은 사람의 온전보다 물질을 선택한 것이고, 주님을 닮는 성화구원보다도 육 운동, 돼지운동을 더 중요시하고 선택을 했으니, 그리고 주님을 쫓아내었으니 결과는 돼지의 결과가 올 것이 분명합니다.

 

그 날이 될수록 진리는 싫어하고 돼지를 키우고 자기 배를 채우는 자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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