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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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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눅6:1-11

2015.11.29.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안식일 문제로 예수님을 비난한 두 가지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비벼서 먹은 일로 예수님을 비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신 일로 비난한 것입니다.


먼저,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른 일로 비난한 사건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누가복음 6장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제자들이 밀 이삭을 비비어 먹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제자들이 시장하여”(마12:1)란 말을 첨가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길을 가던 중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서 먹었는데 그 일을 가지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비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이웃의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따도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3장 25절을 읽겠습니다.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신 23:25). 따라서 제자들이 곡식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을까요?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비비어서 먹은 것을 ‘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즉 제자들이 안식일에 일을 했다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은 성경 해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본문을 가지고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교단이 많이 있는데 각 교단마다 특성이 있는 것은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되 다르게 해석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원에 대한 해석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합니까?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성경해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이런저런 방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장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석하려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신학공부를 많이 하면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입니다. 혹자는 가방 끈이 짧으면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거짓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하느냐 못하느냐는 성령의 충만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사도행전 8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갑자기 빌립에게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즉시 순종합니다.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수레 가까이 가라고 하시자 달려가서 보니 그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가 읽고 있던 것은 이사야 53장 7절 이하였습니다.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행 8:32-33). 그러자 빌립이 내시에게 묻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그러자 내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여기서 우리는 내시의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가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고 말한 것은 문자해독 능력만으로는 성경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외에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충만 입니다. 어떻게 빌립이 그의 수레에 올라서 이사야의 글을 해석해주고 복음을 전하여 그를 구원을 받게 했습니까? 빌립이 두뇌가 뛰어난 석학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빌립이 어떤 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성령이 충만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내시에게 성경을 해석해주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가 늘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강조합니까?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을 복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성령으로 세 가지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이 시대에도 세 가지 사역을 그대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먹은 일로 비난하자 예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3-5절을 읽어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3-4). 이것은 예수께서 사무엘상 21장 1-6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을 다닐 때에 먹을 것이 없자 제사장에게 찾아가서 거짓말을 하고 진설병을 얻어 그와 함께 자들과 먹었습니다. ‘진설병’은 히브리어로 ‘레헴판님’이라 하여 ‘면전의 떡’, ‘누군가의 앞에 두는 떡’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출 25:30). 이 떡은 모두 열 두 덩이로 성소 안에 있는 순결한 상 위에 두 줄에 여섯 개씩 진설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열두 덩이의 떡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고(레 24:8) 민족의 통일을 상징하는 것으로(왕상 18:31,32; 겔37:16-22) 제사장이 아닌 사람은 먹을 수 없었습니다(마 12:4). 오직 제사장만이 일주일 동안 상 위에 진설하고 나서야 거룩한 곳으로 가져가서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레 24:5-9). 그런데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은 그 법을 어겼지만 그 일로 책망을 받거나 죽음을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어겼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들이 율법이 금한 진설병을 먹은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내면적인 뜻과 표면적인 뜻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읽지 않고 내면의 깊은 뜻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으면 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마태복음 12장 7절을 보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그렇습니다. 자비의 마음입니다. 자비의 마음을 갖고 성경을 봐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지만 자비의 마음으로 읽지 않으면, ‘하라, 하지 말라’는 율법에 매여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할지라도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교회나 선교단체가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한다고 그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바르게 사역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다른 안식일에 오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로 비난한 것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6-11절).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사람이 한쪽 손이 마른 것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있지만 외경에는 이 사람의 직업이 팔로 생계를 이어가는 목수라 양식을 위해 부끄럽게 구걸하지 않도록 자신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그 회당 안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예수께서 오른손 마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6장 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한 증거를 찾으려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누가가 ‘엿보니’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동물들이 자신의 먹이를 노릴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예수님께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을 빌미로 고소하기 위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한 손 마른 사람에게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눅 6:8)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소할 기회를 찾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리고 즉시 오른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눅 6:10)라고 하시며 그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화가 나서 예수를 어떻게 할지를 의논했습니다. 이와 동일한 기사를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에는 그들이 즉시 회당 밖으로 몰려나가서 헤롯당과 함께 힘을 합하여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음모를 꾸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병든 자가 고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이것 또한 안식일에 대한 해석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하고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을 치료하신 것을 일을 했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안식일을 지키라는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고 더 깊은 뜻이 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깊은 뜻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자비의 마음을 품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자들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만큼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간 자들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으로 오셨지만 그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줄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해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면 이제부터 성경을 읽은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읽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읽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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