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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초기 한국에서 활동한 여선교사

  • 최한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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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에서 활동한 여선교사


1885년 언드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부활절에 인천 재물포항에 도착하므로 시작된 한국 선교 역사가 이제 130년이 되었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 이 배후에는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활동이 있었다. 그런데 초기 선교 역사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쳤지만 그들 중에 아직까지 조명을 받지 못한 분들이 있다. 바로 초기 한국에서 활동한 여선교사들의 활동이다. 그들은 교육과 의료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므로 한국 사화와 여성들의 의식구조를 변화시킨 공로가 지대하지만 선교 역사에서는 감추어진 체 있었다.

CGNTV가 선교 130주년을 맞아 초기에 내한한 여 선교사들의 활동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11월 1일 오전 10시 30분에 여선교사를 조명한 다큐멘타리가 “잊혀진 헌신: 여선교사, 조선을 비추다”라는 제목으로 방송된다고 한다.

내용은 이화여대 전신인 이화학당 창설자, 메리 스크랜턴(1832~1909)과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여성의학전분학교 설립자, 로제타 홀(1865~1951)을 중심으로 여선교사들의 활약을 방영하는 데, 남선교사들에 비해 감추어진 여선교사들의 활동을 나타낸다는 것에서 대단히 의미 깊다 하겠다.

한국 선교가 시작된 1884년부터 1945년까지 이 땅을 찾은 선교사는 모두 1529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이 선교사들 대부분이 남성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여성 선교사가 1114명으로 70%를 차지한다.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여성 선교사들이 활약한 분야는 교육기관(45.4%), 사경회 및 성경학교(32.8%), 의료기관(19.4%), 복지시실(7%) 등이다. 여선교사들은 주부나 전문직으로 한국에 들어와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남성뿐 아니라 한국 여성들의 의식구조와 생활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로제타 홀의 제자인 박 에스더는 한국 최초의 여의사다. 스크랜턴 양녀인 여 메리는 여성 교육에 앞장 서, 근대 여성 지도자가 됐다. 또 성경공부 등을 통해 한국 교회 성장의 초석을 마련했다.

여성 선교사들의 활동이 한국 여성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남선교사에 비해 거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남선교사들의 활동에는 많은 연구가 있고 그들이 활동한 업적을 한국 선교사에 많은 부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여선교사들의 활동상에 대하여는 거의 알려 진 것이 없다. 설교의 예화로 등장하는 경우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여 선교사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알려주는 것은 숨겨진 보화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옥합을 깨트려 헌신적으로 섬긴 성도들은 많은 부분에서 여성들이다. 그에 비해 중요한 직분은 대부분 남성들의 몫이 되어 있고 남성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역시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것이다.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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