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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믿음의 발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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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발걸음으로
- 황형택 목사 (강북제일교회)

우리에게 맹점 하나가 있다. 사실 하나만 있겠는가만,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말하는 습관이 그것이다. 분명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조금도 요동치지 않을 진리인 것처럼 맹종하고 맹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꿈을 무너뜨린다. 허물어 버리는 작업을 너무도 쉽게 한다. 보이지 않아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현재의 자리라는 기둥에 밧줄로 자신을 묶어버린다. 아예 자신을 땅 속 깊이 묻어버려 조금의 꿈도 꾸지 않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19세기 말 조선 땅을 밟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절절한 기도문을 하나 읽어보자. '뵈지 않는 조선인의 마음'이란 기도문이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가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언더우드 선교사는 우리의 맹점을 뛰어넘어 조선의 영적 미래를 꿈꾸며 보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지금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지만, 머지않아 조선은 은총의 땅이 될 것을 미리 본 것이다. 무엇으로 볼 수 있었을까? 무엇 때문에 언더우드는 은총의 땅을 미리 보고 이 땅까지 왔을까? 바로 믿음이 열쇠였다. 그래서 마지막 기도문을 그렇게 끝내지 않았는가?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라고. 

믿음이 흔들리면 보이지 않을 때 없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믿음이 흐려지기 시작하면 미래의 은총은 눈에서 사라져 버린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꿈꾸게 하고 마침내 이루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어야 축복받을 땅과 은총이 흐르는 땅을 보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그렇게 고귀하고 강력하다. 믿음을 가지면 끝까지 걸어간다. 절망할 수 없고 좌절의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나 전진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총의 땅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작업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은 폴 세잔이 지인에게 글을 보냈다. 

"나는 고집스럽게 작업을 계속한다네. 나는 길을 개척하면서 죽을 결심을 했네.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진 약속의 땅을 보기 때문이지." 그래, 폴 세잔의 말이 믿음 가진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믿음으로 한 걸음 더 걸어가 보자. 은총의 땅을 보는 믿음의 발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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