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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민 3분의 1을 바보로 만든 무지와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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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3분의 1을 바보로 만든 무지와 독선

- 김상근 교수 (연세대 신과대)


지난 두 달간 전개된 이른바 '촛불정국'에서 SBS는 열외의 언론매체였다. 그런데 갑자기 SBS가 뜨거운 시국 논쟁에 뛰어들었다. 뜬금없는 기독교 비판 다큐멘터리다. SBS가 밝힌 '기획의도'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의 기원을 찾고 같은 뿌리를 가진 '유일신 사상'이 서로 투쟁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4회에 걸쳐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이런 삼류 프로그램을 제작한 SBS의 무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 대학교 1학년 학생이 쓴 보고서보다 못한 이런 허접스러운 다큐멘터리를 송출한 SBS의 독선이 한숨을 짓게 한다.

기독교는 무지와 독선의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온 인류는 지난 2000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제 SBS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는 전체 4부가 다 방영되었으니, 프로그램의 내용을 차분히 분석하고, 왜 SBS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무지와 독선을 드러냈는지를 공개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SBS의 프로에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을까?


삼류 학자들의 코미디

제1부 '예수는 신의 아들인가'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예수는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니고 이집트 종교나 미트라 신앙에서 차용된 가공의 인물이란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2000년간 기독교 신앙을 믿어 온 사람들은 모두 바보가 되고 지금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모두 무지몽매한 신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되는 셈이다. 예수의 역사적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동원된 학자는 티모시 프리크(Timothy Freke)와 로버트 프라이스(Robert Price) 등이다.

티모시 프리크의 학문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의 공식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라(www.timothyfreke.com). 자기 웹사이트에서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면서 '코미디언 철학자(Stand-up Philosopher)'로 버젓이 소개하고 있다.

로버트 프라이스는 또 어떤 인물인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라 웹사이트를 뒤져보니 조니 콜몬 신학교(Johnnie Colemon Theological Seminary)의 성서학 교수로 되어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이 정체불명의 신학교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보편적 기초(Universal Foundation for Better Living)'라는 황당한 교단에 소속된 신학교로, 교단의 공식 웹사이트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이 교단에 소속된 교회의 숫자는 총 15개이다(www.ufbl.org). SBS는 이런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않고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믿고 있는 종교의 창시자에 대해 '신화적 인물' 운운하였을까?

전 세계에는 신학 명문대학이 있고, 세계 교회의 일원인 여러 정통 교단이 있다. 그런데 SBS는 스스로 코미디언임을 자처하는 사람과 3류라고도 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신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의 말이 진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행태를 보여줬다.


종교학자는 모두 전투 위치로?

이번 4부작에 출연한 한국 신학자 및 종교학자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종교학자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학문 환경이나 담론 성격은 신학자들의 그것과 과연 동일하다고 생각하는가? 다르다면 신학적 주제에 대한 학문적 평가는 신학자들에게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과연 당신들의 학문은 한 종교에 편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중립성이나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믿는가?

당신들의 학문 분야가 '종교학'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권위를 부여받았고, 따라서 일개 종교를 연구하는 '신학자'들의 논설은 편파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무시되어야 하는가? 분명하지만 객관적인 것은 없다. 중립을 지키는 학자란 말장난일 뿐이다. 신앙적 고백의 역사성을 논의하는 자리에 종교학자들이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집트 종교와 미트라 신앙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와의 유사성을 1대 1로 대응시키는 '비교종교학적' 방법론은 이미 1960년에 폐기되었다는 것을 뻔히 아는 종교학자들이 왜 저런 비약을 일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라와 하나님: 언어학 기본에 도전하다

그래도 제2부 '무함마드, 예수를 만나다'는 방송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프로였다. 이교도에게 개방되지 않는 메카와 이슬람 성지 촬영에 성공했고, 테러의 종교로 알려져 있는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준비의 소홀이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알라와 하나님이 같은 절대자란 주장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이 어원적으로 같다는 말은 사실이다. 가장 많은 이슬람 신도를 가진 인도네시아 기독교 성경은 기독교의 하나님 이름을 '알라'로 쓰고 있다. 그런데 모름지기 언어란 것은 어원도 중요하지만,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미가 새롭게 형성되기도 하고, 또 소멸하기도 한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확장도 발생한다. 알라의 경우, 유일신을 뜻하는 이슬람의 신으로써 유대교와 기독교의 절대자와 같은 의미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전혀 다른 두 종교의 절대자로 이해되고 있다. '알라'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이슬람 사회의 음가(音價)를 획득했으며, 이것은 기독교의 '신(하나님)'과는 다른 것이다. 좀 더 복잡하게 말하자면 기독교와 이슬람의 절대를 지칭하는 기표(記標)는 하나님과 알라로 다르다. 기표가 다르면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기의(記意)는 소속된 사회의 문화나 언어 환경에 따라 상이한 의미작용을 일으킨다. 이것은 언어학의 기본이다. 기본적인 상식의 확인 없이 주관적 신앙의 영역에 객관성이란 이름의 억지를 부린 SBS의 용기가 놀랍기만 하다.


클리포드 기어츠를 아시나요?

제3부 '남태평양의 붉은 십자가'를 보고 제일 불쾌했을 사람들은 아마 남태평양 바누아투의 타나 섬에 선교사를 파송했던 영국 기독교인들이었을 것이다. 바누아투의 원주민들이 선교사들의 강압으로 이식시켰던 기독교를 버리고 자신들의 토착문화로 돌아갔다는 내용까지는 볼만했다. 반대로 그토록 강력하게 기독교를 식민지 영토에 전파하려고 했던 영국인들은 신앙과 교회를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거나 샤머니즘에 심취해 있다는 내용은 영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이런 식으로 원주민들의 문화와 종교를 평가하는 방식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 인류학의 태두인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가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수행한 인류학적 연구 결과 때문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인류학 전체를 뒤집는 내용이었다. 인류학자는 원주민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으며, 유일하게 인류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의 해석을 다시 해석하는 중층기술(thick description) 뿐이란 것이다.

명저 '문화의 해석'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이 인류학의 새로운 연구 방법론은 인터뷰를 당하는 원주민과 카메라를 들이대며 인터뷰를 하는 SBS 기자들의 상호관계에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번 프로에서 원주민들은 한국의 기자들 앞에서 본심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정보를 조작하여 흘려주었을 뿐이다. 이미 바누아투의 원주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터뷰를 당해 본 경험이 있고, 그 인터뷰의 목적과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SBS 취재진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보여주고 말해 준 것이다. 원주민들의 계산에 말려들어 원했던 대답을 듣고 만족했을 SBS 취재진의 자기만족감을 애처롭게 생각한다. 이런 기어츠식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최근 EBS가 제작한 '행복한 섬, 바누아투'를 시청하길 바란다. 똑같은 바누아투 사람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EBS도 속은 것이다!


유대인 문제와 반유대주의 은밀한 유혹

SBS가 방영한 4 부작 '신의 길, 인간의 길'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문제는 유대인 문제에 대한 몰상식에 가까운 왜곡, 정보 부재, 편파적 보도이다. SBS가 만약 기획의도대로 유일신 종교 간의 분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였다면 유대인 문제가 더 심층적으로 다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SBS는 유대교 찬양 일색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종교적 정당성을 강변하는 랍비의 주장을 그대로 방영했고,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이 자선이라고 호소력 있게 설명했다. 예수가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학자는 영국의 유대인이었다. 과연 그럴까? 유대교는 신화적 내용을 맹신하는 무지몽매한 기독교인이나 테러를 일삼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탈레반이 설치는 이슬람보다 더 윤리적이며, 세계의 평화를 주창하는 종교일까?

유대교가 그렇지 않다고 증명하기 전에,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SBS 제작진의 상식과 세계 인식에 대해서 묻고 싶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아니면, 기독교와 이슬람 신앙에는 논리적 비약을 일삼으며 언론의 치명타를 입히고 대신 유대교를 샬롬의 종교로 둔갑시키기 위한 의도나 목적이 있었던가?


'신의 길…'이 한국 교회에 남긴 것

SBS가 와신상담 제작한 '신의 길, 인간의 길'은 제작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참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작 과정에서 참여해야 할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 신앙이라는 주관적 세계에 섣부른 판단을 내림으로써 무지와 독선을 동시에 드러냈다. 유대주의와 반유대주의, 미국과 세계화의 문제, 종교 간의 갈등과 대화 가능성, 각 유일신교의 역사, 종교학 논의와 인류학적 성찰-이 모든 것을 한 다큐멘터리가 담는다는 것은 지적 교만에 불과하다. 인류는 이 문제를 놓고 지난 2000년 동안 고민하고 기도해 왔지 않았던가?

그러나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은 한국 기독교에 새로운 사고의 출발점을 제공했다. 이 프로그램은 피켓을 들고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이런 무지와 오만으로 가득한 프로그램이 지상파를 통해 네 번이나 방영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얼마나 무지하고 오만한 곳인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더 그러할 것이란 예측을 가능케 한다.

학자는 연구실로, 목회자는 기도실로, 성도들은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SBS를 비난하는 피켓을 접고, 다시 자성과 참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최근에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멋진 구절을 보았다. 그렇다. 무지가 진리를 이겨본 적이 없다. 오만이 겸손의 힘을 이겨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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