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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순신에 대한 일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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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에 대한 일본의 기억

-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잊었지만,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이순신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 결과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하며 일본역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세계의 문명국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도자기나 만드는 야만국인 줄 알았는데, 러시아 발틱함대를 이긴 것을 보고서야 문명국임을 알게 되었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이 승리로 일본의 도고 제독은 세계적인 명장이요 일본 역사상 10대 영웅의 하나로 이름이 올라갔다.

승전 축하연에서 어떤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각하의 업적은 영국의 넬슨, 조선의 이순신 제독에 비견할 빛나는 업적입니다." 도고는 정색하며 말했다. "나를 이순신 제독과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이끌어 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인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일본 해군 소장 가와다 이사오가 쓴 '포탄을 뚫고'라는 책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당시의 조선에서 유일하게 청렴한 장군이었고 충성심과 전술 전략 운영 능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선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전술을 금방 잊어 버리고 38년 만에 병자호란을 다시 당했다. 조선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까마득히 잊혀졌지만 일본에서는 그를 존경하여 메이지 시기 신식 해군이 창설되었을 때 그의 업적과 전술을 연구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19세기 말 일본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이순신 전술전략'이라는 교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8년간이나 영국에서 넬슨 장군을 연구하였던 도고 제독의 모델은 언제나 이순신 장군이었다. 러일전쟁 승전 후 도고 제독이 세계적인 영웅이 되어 있을 즈음, 미국 해군사관학교 4학년 임관 후보생들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사관생들이 도고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은 명료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조선의 수군을 지휘한 이순신 제독입니다." 영국의 넬슨 정도만 알던 미국 사관 생도들은 이순신이 누구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 했다고 한다.

1905년 5월27일 새벽 러시아 발틱함대가 블라디보스토크 항으로 가기 위해 대한해협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소식을 접한 진해 앞 바다의 일본 함대는 대한해협 방면으로 나가 아직 잠이 덜 깬 발틱함대를 기습하여 격파하기로 작전계획을 세웠다. 큰 전투 경험이 없었던 일본의 병사들은 불안하고 초조했다. 불안감에 일본 군인들은 갑판 위에 작은 제단을 만들고 승전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놀랍게도 제단에 모셔진 신은 조선의 이순신이었다. 일본 해군들은 자기네들이 전쟁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던 이순신 장군에게 러시아 발틱함대를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기원했다. 공교롭게도 이 예식이 행해지던 해역은 그 옛날 일본인 조상들이 무더기로 수장되었던 바로 그 남해 바다였다.

조선에서는 잊혀진 이순신이 일본에서는 우상숭배의 수준으로 존경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 발틱 함대를 무찌르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꾸 배워야 한다. 분노와 비판으로는 결코 미래의 승리는 오지 않는다. 이기기를 바라는 사람은 대가에게 배우려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이 민족에게 이런 겸손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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