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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실패를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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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보는 눈  

- 손달익 목사(서문교회)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지난 6월5일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기념강연을 했다. 그 강연에서 그녀는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마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에 이미 세상을 바꿀 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녀가 말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내면의 힘은 실패를 통해 얻는 유익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삶과도 유관하다. 롤링은 결혼에 실패한 뒤 홀로 딸을 키우는 싱글 맘이다. 삶이 어렵고 가난이 지겨워 자살도 기도해 보았다.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 친구에게 600파운드를 빌려 에린버러 변두리에 허름한 임대아파트를 얻고 우울증과 싸우면서 써내려간 이야기가 해리포터였다.

실패의 밑바닥이 그녀가 딛고 일어선 발판이었고, 처참한 막다른 골목이 삶의 새로운 문이 열리는 희망의 자리였다. 그는 계속해서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실패를 진정한 실패로 여기는 패배의식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누구의 삶에나 실패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 실패는 보는 눈에 따라 몰락의 길목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하고, 새로운 삶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창세기 35장 16∼20절에는 베냐민의 출생 기사가 기록돼 있다. 베냐민의 어머니 라헬은 난산 끝에 숨을 거두면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불러달라'고 유언했다. 슬픔의 아들, 고통의 아들이란 뜻이다. 왜 라헬은 이 좋지 못한 이름을 그 아들에게 주려 했을까? 라헬은 야곱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나 자식을 낳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남편에게 '죽어버리겠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라헬은 만족을 몰랐고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여겼다. 결국 죽음의 문턱에서도 삶에 대한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자기 생각을 드러내면서 사는 것은 그저 슬프고 고통스러울 뿐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야곱은 달랐다. 그렇게 사랑하던 아내가 죽어가면서 남긴 부탁이지만 그는 자기 아들을 베노니로 부를 수 없었다. 그는 베냐민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그 아들은 슬픔의 아들임에 틀림없다. 핏덩이로 세상에 나던 날 제 어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삶이 축복되거나 환영 받을 리 없었다. 떠나버린 아내의 시신 곁에서 핏덩이 아들을 안고 야곱도 무척 슬퍼했으리라. 그래서 그 아이는 베노니가 맞는다. 그런데 야곱은 그를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능력의 아들'로 불렀고 이것이 그 아이의 이름이 되었다.

슬픈 운명 속에 태어난 불쌍한 아이지만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붙잡아주시는 축복된 아이임을 본 것이다. 같은 아이를 두고 어머니는 베노니로, 아버지는 베냐민으로 보았다. 누가 더 바르게 보고 바르게 사는 사람인가?

미국 심리학회장을 지낸 바 있는 셀리그먼 교수는 '한 개인이 지닌 부정적 심리를 보지 말고 그가 지닌 긍정적 요소에 주목하라'고 권고한다. 내면 속에 있는 우울, 분노, 좌절, 상처 등에 주목하기보다 사랑, 절제, 겸손, 열정 등 긍정의 요소를 주목하면 훨씬 더 행복에 가까운 삶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베노니로 부르지 말고 베냐민으로 불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실패를 바라보는 패배주의적 시각이다. 실패 속에 있는 교훈과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영적 안목이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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