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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열린 이념과 열린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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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이념과 열린 민족

- 배성산 목사(서울교회)


금년은 광복63주년과 대한민국 정부수립60년이다. 광복과 새 정부 사이 3년간의 역사는 이념과 민족에 대한 역사인식에서 현실의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말았다. 특히 3년의 기간은 민족사에 커다란 문제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 한반도가 38선으로 양분되고 남이 미국세력권, 북이 쏘련 세력권으로 대립하여 한쪽은 냉전에 편승함으로 민족의 살길을 찾으려 하였고 다른 한쪽은 냉전의 조류를 거부하고 민족의 활로로 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황에서 결손 된 정부로서 이념의 헌정은 한 민족의 애환(哀歡)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남한의 정치는 일제하의 타협주의와 부일협력자들의 기회주의와 연합하여 타협적 추세를 이루었고 이로 인해 반민족 부일협력을 숙청하라는 국민의 여론이 비등했으나 미군정은 이러한 여론을 무시하고 정부는 미군정에 의해 친일세력을 두둔 보호하는 것이었다. 빗발치는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친일세력은 제헌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여 처벌하려 들자 이를 방해하기위해 ‘대지(大地)구락부’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친일파숙청을 주장하는 이들을 ‘공산당의 수구(守舊)’로 몰아쳤다. 또한 대한민국의 정부는 친일파를 보호, 자기 권력기반을 굳히고 정부는 농지개혁을 지주들에게 유리하게 실시하여 더욱 권력기반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48년 8월 정부가 수립된 후에 농지개혁법의 입법과 국회통과가 논란의 여부로 지연을 거듭하여 49년6월21일에 통과되고 이의 시행령이 공포된 것이 50년 3월25일로 정해진 것은 농민들에게 불리하게 정해지는 통과과정임을 알게 한다. 가관인 것은 이렇게 지연되고 있는 동안에 지주들의 강매가 급격히 늘어나 45년 12월 현재 소작지 총면적이 논, 밭 합하여 144만7천359 헥타르였으나 그 사이에 87만4천 헥타르가 강매되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누가 설명해도 지주에게 절대 유리하게 농지개혁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농지개혁후의 농민들에게 대한 보호대책이 전혀 없었음을 아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반공에 기인하여 미국의 세계전략이 냉전방향으로 기울어지면서 구호로서의 민족주의를 내세웠으나 이념으로는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경우를 보는 것이다. 광복이후 민족문제인 통일은 남북협상에 의한 자주적 통일노력이 좌절되는 역사의 현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민족자주주의의 좌절을 의미하고 냉전편승으로 다시 일제잔재의 재생을 가져오는 것임을 역사로서 우리는 알게 된다. 60년이 지난 오늘에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들의 배타적인 민족주의 경향이 심해가는 것을 본다. 과거 역사 속에서 열강들의 민족주의 경향이 침탈의도까지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그 국가주의의 망령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나고 있고 우리 내부에서도 일본이 야기한 독도 문제가 발생한 후 한국의 언론들은 연일 애국심을 자극하고 이를 고취시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사람들은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한다. ‘애국’과 ‘국가’는 최우선 가치로 부상한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반일 감정은 이미 이성의 통제를 넘어선다. 흔히 민족주의니 애국심이니 국가주의 같은 것은 타민족에 대한 공격성 타국에 대한 배타주의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면을 보면서 이러한 현실의 문제가 제기되면 과거 한반도 주변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침탈에 기승을 부린 열강들에게 한민족의 과거 역사의 뼈아픈 기억을 상기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요즘 중국에서 올림픽 경기가 한창이다. 금메달의 달성에만 목적이고 그리고 자국의 금메달 확보에만 열을 올려 상대에 언짢게 하는 행동은 삼가야 할 일이다. 유득 과거 침탈한 나라와의 경기에서는 과거의 정황을 담아 열기뿐 아니라 적대국의 상념을 자극함에서 자국의 국가주의에로만 편협 하는 경향에 우려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 할 점은 반공이념이나 국가주의의 재론에 대한 지난 역사의 이해에 고착하여서는 아니 됨을 알게 한다. 글로벌 시대를 맞는 지금의 우리는 자국의 이익에만 편승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자신들의 ‘자기 민족 중심주의’를 상당히 강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는 한국의 ‘자기 민족 중심주의’가 상대적으로 그토록 높은 것도 아니고 국가와 결탁한 각종 ‘이념적 기구’들의 세뇌교육이 그토록 심층적인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와의 결속이나 상호협력을 생각하는 공동의 글로벌 시대에 처한 현실의 의미를 가다듬어야 하는 세계적인 화해와 평화의 명분을 얻어야 함을 알게 한다. 이제는 한반도의 주변국인 동북아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들 간의 과거 역사에 대한 공동역사연구가 전개되어야 한다. 

이것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상호 신뢰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열린 민족주의’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광복63년, 정부수립60년이 갖는 의미로 ‘이념과 민족’에 대한 열망은 “열린 이념과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아 60년의 역사는 오늘에 이르러서 역사의 굽이굽이 마다 우리 민족의 의식의 변화를 전환시켜 오는 시대적인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광복 전 광복 후 한일합방으로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의식구조의 변화를 보게 된다. 광복 전에 생활이념은 개화를 통한 민족자강(民族自彊)의 노력이요 또 한 가지는 독립운동을 통한 자주적 근대민족국가의 수립이었다. 

이 민족자강의 노력은 교육의 보급, 국학의 진흥, 언론의 활성화, 산업진흥의 노력으로 나타났다. 광복 이후의 이념의 의식구조는 국민의 정치적 욕구가 분출하여 대립과 혼란이 야기 되었고 전통적 가치관과 일제 때 유지되었던 한국인의 가치관과 생활방법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미국의 이념과 가치에 우리는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눈여겨보는 것은 극한적 이념 투쟁으로 유혈적 폭력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단의 경쟁의식은 이기주의, 황금만능, 쾌락적 향락주의, 기만과 사기, 폭력, 출세주의 등으로 사회혼란은 더해 왔다. 

이러한 현상에서 60년대에 들어와 조국근대화와 산업화를 국가권력이 개입하여 오게 되는 것이다. 가난 추방과 국가안보체제의 강화로 비민주, 비합리적 현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사회적 소요의 집회가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불신과 자학의 감정이 무형적인 국력을 약화시키고 있음도 오늘에 보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시대에 민주시민으로서의 법치와 준법의식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상하질서의 권위주의에서 평등적 민주문화로 변화발전 해 가는 와중에 공동체의 상실과 생활문화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임도 알게 된다는데 주목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난 역사는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가지고 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보면 역사의 고착된 이해만으로는 미래의 희망이 어둡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문저널지 ‘글로벌아시아(Global Asia)'에 전(前)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4월15일에 기고한 '동북아 미래, EU의 정신 배워야’한다는 그의 ‘특별기고’에 주목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들 간에는 과거의 반목과 대립, 그리고 갈등의 관계를 보면서 이제는 협력과 통합의 새로운 지역 질서를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동북아 공동체를 구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적인 요청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동북아평화정책을 위해 다자안보협력에 대한 구상을 제시하고 경제, 사회, 문화 부문에 협력방안을 위해 모색함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점은 북한의 핵문제였고 역사 문제를 둘러 싼 한반도 주변의 국가들 간에 불편한 관계와 평화번영의 정책구현에도 서로 다른 문제를 알게 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스스로의 양식과 합리적 지혜로 과거사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 할 줄 믿었는데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위안부 관련 강제성 부인 등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려는 일련의 행동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일본과의 과거사 정리뿐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는 역사의 왜곡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가져오고 나라와 지역을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는 결과를 가질 것이라는 당연한 현실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여기에 대한 문제 해결은 모두가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을 가능케 하고 주변 국가들과 화합과 협력의 공감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예로서 우리는 EU의 발전과정을 보고 유럽공동체로서의 명분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 동북아지역의 미래의 전망을 알게 되는 것이다. 유럽은 대결과 파멸의 과거 역사를 평화와 번영의 역사로 바꾸어 나가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일찍이 이성적 성찰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유럽 사람들답게 전쟁의 역사로부터 새로운 교훈을 얻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후 독일의 과거사 청산과 철저한 반성은 유럽역사의 응어리를 풀어 유럽통합의 기초를 다진 바 있다. 이것은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의 공동역사교과서는 새로운 세대에게 올바르고 통합된 역사 인식을 가능케 해 주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이제는 자국민의 이익, 소아(小我)의 울타리를 넘어서 공동 이해에 기초한 새 역사를 일구어 나가야 한다. 역사는 이미 완전한 구도를 가지고 꾸며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해 가는데 그 정황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한반도 주변의 배타적 민족주의의 제1의 침탈 대상이 되어 침해를 당한 민족이 우리 한민족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한다. 

일제의 지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쏘련의 한반도 점령, 냉전으로 인한 분단과 전쟁, 권위주의적인 냉전체제 등이 역사의 침탈행위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려하는 것은 북한 핵문제를 빌미로 열강들의 민족주의가 한반도에서 충돌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가 없음을 주의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체제를 위한 근본적 과제는 자국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차지하려는 열강들의 민족주의의 극복인 “열린 이념, 열린 민족”주의 임을 알아야 한다. 이들 민족주의의가 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힘에 의한 평화로서는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전(前)노대통령의 지적과 같이 ‘역사는 완결한 구도가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는 전제와 평화, 번영, 민주주의, 그리고 공동체를 향해 함께 가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는 말에 동의를 한다. 자국의 애국심,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고양한다는 목적으로 타국과 타 인종 타 민족을 비난하는 경우에 생기는 국가 간의 이념과 갈등이 유발하는 것은 삼가 했으면 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는 서로의 문화와 민족을 사랑 하듯이 외국의 문화와 민족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볼 때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같은 개념은 매우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배타성이 강한 종교적 독선이 끝없는 분쟁을 가진 것처럼 국가나 이념이 민족적 독선으로 지향할 때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과 북의 통일에 대한 이념이나 민족에 대한 이해도 열린 민족 관으로 진일보를 알게 한다. ‘이념과 민족’에 대한 의미는 대한민국의 60년의 역사 속에서 일구어 낸 교훈의 언어임을 알고 두 단어가 일방적으로 독선이 될 때 ‘악의 축’이 됨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 ‘평화민족주의’ 구현은 ‘이념과 민족’에서 곧 “열린 이념과 열린 민족”이어야 함을 알게 한다. 세계의 분쟁과 갈등을 넘어서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세계평화주의이어야 함을 대한민국은 환갑(還甲)을 맞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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