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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허벌판의 마지막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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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의 마지막 출구


신문 사회면들과 TV 뉴스를 매일처럼 메워나가고 있는 범죄상들이란 빈 깡통 굴러가는 소리들이며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행려병자들의 신음소리인 것이다. 남의 돈을 제것인양 삼켰다느니, 누가 누구를 죽였다느니, 누가 누구를 짓밟았다는 등의 메스꺼운 이야기들은 ‘빈들에서 살고 있는 속 빈 사람들의 불행한 이야기’들이다.

누가 우리 시대를 가리켜 ‘이곳은 빈들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일찍 사르트르는 “출구가 없다”라고 인간실존의 절망적 상황을 절규한 바 있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절망은 ‘이곳은 빈들이오’라는 절규이다. 

예수께서는 벳새다 빈들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덩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베푸셨다. 정말 그곳은 빈들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곳은 빈들이 아니었다. 왜 빈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곳에 민중이 있었고 그리고 그 민중을 사랑하는 예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역사의 주체와 국가의 주체는 민중이다. 역사의 주체가 있고 그 주체의 주체이며 지배자인 예수가 그곳에 있었는데 왜 그곳이 빈들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보시오 이곳은 빈들이오 때도 저물었으니”라고 했던 제자들은 역사가 무엇이며 역사의 흐름이 어떤 것이며 그 역사를 책임지고 해결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온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충만케 하시는 주님께서 빈들에 계시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그날 그 빈들에서 예수께서 5천명을 그것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먹이셨다는 물량적인 측면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라는 이성주의적 신앙인들의 회의론이 대두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그 능력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그날 그 빈들에 모였던 사람들이 5천만 명이었더라도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 다만 떡으로 떡을 만들고 고기로 고기를 만든 것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던 사탄의 ‘최초의 시험’을 물리쳤던 예수의 질서성과 합리성 때문이었다. 

도대체 보리떡으로 보리떡을 만들었던 예수의 평범한 기적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미 영원부터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신 존재의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자동차의 행렬이 홍수를 이루며 현란한 삶의 조건과 그 풍요로움들이 밤하늘에 퍼지는 폭죽빛보다 더 아름답고 감미롭다고 해도 그 속에 민중이 발붙이지 못하고 예수가 계시지 않는다면 그곳은 ‘빈들’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없더라도 그곳에 역사의 주체인 민중이 있고 민중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계시면 그곳은 빈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곳은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곳이며, 새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는 곳이며, 새 역사 창조가 시작되는 곳이다. 

결국 벳새다 들판의 문제는 그곳이 ‘빈들’이었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빈들’이었고 마음의 ‘빈들’이었으며 역사구조와 정황의 ‘빈들’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곳은 빈들, 그러나 예수는 어제도 오늘도 빈들을 채우시고 내일도 빈들을 풍성한 축제의 장으로 만드실 것이다. 내 마음의 빈들과 우리 시대의 빈들에 예수만 계시면 5천명이 먹고 남는 기적이 오늘도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 출처 : 충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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