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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를 믿을 수 없어서 당신을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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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편지] 저를 믿을 수 없어서 당신을 믿었습니다   

- 이철환 동화작가
 

나도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약속을 하면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고 나에게 총을 겨누었다.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거침없이 말했고, 때론 거짓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지 말라고 나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세상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곳곳마다 화약 냄새가 가득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사람들 사이에 전선이 있었다. 자기 혼자만 건너려고 징검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등짝을 징검다리처럼 밟으며 험한 세상을 건너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상은 때때로 나를 속였다. 세상에 상처 받으며, 나에게 상처 받으며, 내 몸에도 하나둘 가시가 돋아났다. 찌르는 칼도 있지만 지키는 칼도 있다고 나는 나를 위로했다. 삶의 굽이굽이마다 사납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바람을 이기려고 나도 바람이 되었다. 바람은 바람을 이길 수 없었다. 밤이 깊어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었다. 환상과 환멸이 춤을 추는 세상이었지만 눈물이 되어 스미는 사랑도 있었다. 지리멸렬한 세상의 바다에 섬처럼, 등대처럼 떠 있는 빛이 있었다. 명멸하는 그 빛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파랑 같은 눈빛이었다.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나무가 되어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작은 십자가라도 되고 싶었으나 나는 하루하루 칼자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면 나 혼자 있는 곳에서 그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내가 뱉은 욕들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되어 마디마디 나를 더럽혔다. 때로는 반짝이고 싶어 내 몸에 불을 켰다. 어쭙잖은 글이지만 내가 쓰는 글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다. 가급적 겸손했고, 가급적 배려했고, 가급적 칭찬했으며, 집에 갈 차비까지 몽땅 내주고 한겨울 새벽길을 서너 시간씩 걷기도 했다. 삶의 무게보다, 나이의 무게보다, 내가 쓴 글의 무게가 내게는 훨씬 더 무거웠다. 

철없던 시절 가난한 엄마에게, 엄마가 나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막말을 한 적 있지만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부자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돈의 가벼움을 나의 전 재산으로 삼을 수 있었다. 만원이 있으면 만원으로 밥을 먹었고, 천원이 있으면 천원으로 상다리가 부러졌다.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나를 버리지 않고는 한움큼의 진실도 얻을 수 없었다. 

하나님, 저는 나비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내와 딸아이에게 혈기를 부리고, 막말을 하고, 죽이고 싶도록 제가 싫어 당신의 이름조차 모른다고 했을 때, 당신은 끝끝내 제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주세요. 저를 믿을 수 없어서 당신을 믿었습니다.유리창 너머로 가랑비 내리던 밤,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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