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명절에 생각나는 일

첨부 1


명절에 생각나는 일  
 
- 손달익 목사(서문교회)


다가오는 주일이 추석 명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겠고 모처럼의 휴가를 즐기게도 될 듯하다. 그런데 명절을 맞이하는 우리 주부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노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주부들은 인사차 들르는 손님 접대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종 증상이 생기기까지 했을까?

그러나 이런 일은 그래도 아름답고 귀여운 측면이 있다. 그래도 고향을 찾아 어른들을 뵙고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최근에는 아예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가족 공동체의 견고함이나 자녀들에게 뿌리 교육을 시키는 일 등에는 아주 관심이 없어진 사람들인 것 같아서 씁쓸하다.

우리는 명절을 보내시던 예수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명절 보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예컨대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가를 찾으신 모습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예수님께서도 명절에 다른 사람들처럼 예루살렘에 가셨다. 예수님 시절에는 예루살렘에 오랜만에 성전 제사가 재개되어 명절이 되면 웅장한 새 성전을 구경하려는 사람들과 모처럼의 기회에 하나님께 성전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그때 예수님이 가신 곳은 성전으로 통하는 양문 곁의 베데스다 못이었다. 성경에는 이곳에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와 장애인,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천사가 물에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내려가는 사람은 고침을 받게 된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영혼과 육신 모두가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명절날 예수님은 이곳에 가셔서 그 가운데 무려 38년을 앓고 있던 한 사람을 고쳐 주셨다. 양문이란 제사에 제물로 바칠 양들을 끌고 들어가던 문이어서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것이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 친구들과 얼싸안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군상들로 도시 전체가 시끌시끌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화려한 성전에 있지도 않았고, 거리의 축제에 있지도 않았다. 옛 친구들이나 나사렛에서 올라온 친척들을 수소문할 생각도 않으셨다. 주님은 이 잔치의 소리를 귓가로 흘려들으면서 지치고 병든 육신을 안고 괴로운 신음을 토해내는 무리들로 가득한 베데스다 못가의 행각을 찾아가셨다. 주님의 관심은 모두가 즐기는 명절에 누구도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진 밑바닥 인생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명절은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 가족들도 모두가 즐거워야 하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도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예수님처럼 우리의 관심이 우리 사회의 변두리에서 힘든 삶을 이어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베데스다 못가의 사람들 곁에 있을 수 없을까? 다른 사람들은 흥겨운 축제로 삶의 스트레스를 씻어내게 하고 우리는 베데스다의 행각으로 달려가 육신의 고통과 미신의 미혹에 빠진 형제들을 끌어안고 기도하고 사랑의 눈빛을 보낼 수 있으면 어떨까? 그래야 예수 믿고 사는 사람답다는 자기 만족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돈을 낭비하며 오락에 빠지기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