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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 안에서만 ‘소통’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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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만 ‘소통’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사회에서 올 여름을 강타한 주제는 ‘소통’이었다. 한국교회에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아프간 사태는 ‘공격적 선교’라는 다소 엉뚱한 단어와 함께 곤욕을 치렀고,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 내 일부 기독교 공직자들의 언행이 ‘종교 편향’이라는 낯선 단어와 함께 도마에 올랐다.

기독교인 수 감소, 아프간 사태로 격화된 반기독교 감정이라는 충격적 성적표를 받아든 교계는 어느 때보다 ‘소통’을 고민하고 있는 모양새다. 올해 기독교영화제 주제도 ‘소통’일 정도다. 그러니 50여년간 한국사회와 교회의 중요 현안을 고민해 온 새문안교회 언더우드 학술강좌의 주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정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사실 누구나 ‘소통’의 필요성을 얘기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무엇을,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누구도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예수’의 이름을 숨긴 채 그들에게 웃으며 접근할까 하는 방법론만 난무한다. 자주 쓰이는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모호한 말로 다소 투박해 보일 수 있는 ‘보혈의 능력’을 대신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학술강좌 주제강연에 나선 숭실대 김회권 교수의 강의는 퍽 인상적이었다. 김 교수는 이러저러한 ‘소통’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여러 사람들과는 달리, “교회가 교회다울 때 비로소 세상과의 상관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적확한 지적이다. 촛불만 든다고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

김회권 교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하여 적대적으로 자폐하여 교회라는 영역으로 퇴각하거나, 아예 세상과 야합한 세상의 벗이 됨으로써 지극히 세속화되는 위험에 처한다”고 진단했다. 신앙이 가장 좋은 사람들은 충무로와 을지로, 세종로와 테헤란로를 떠나 신학교로, 선교사로, 목회현장으로 투신해 버려 세상은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독무대가 된다고 김 교수는 개탄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외칠 공세적인 하나님 나라 복음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실한 신앙고백이 사라져 버리니 ‘소금과 빛’으로서의 실천의 힘 또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파송돼 일하는 증인의식을 결여한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와 경제, 대중문화와 예술, 과학기술 등의 영역에서는 기독교적 주장이 먹혀들지 않거나 통하지 않는다고 지레 겁을 먹고 만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지난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우리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만 큰 소리로 찬양하며 기도하고 있지 않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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