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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요 편지] 감나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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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편지] 감나무 집  

- 이철환 동화작가
 

우리 동네에는 감나무 집이 있습니다. 감나무 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다섯 그루나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들은 어른 주먹만한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바람에 휘청거렸습니다. 낚싯대에 매달린 황금 잉어처럼 주황빛 감들은 탐스러웠습니다. 가을이 오면 동네 아이들은 감나무 아래 서서 까르르 까르르 신이 났습니다. 아빠 머리 위에 목마를 타고 잘 익은 감을 따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캥거루처럼 폴짝폴짝 뛰며 감을 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다 익은 감이 땅에 떨어져 묵사발이 되는 날은 동네 강아지들 잔칫날이었습니다. 

어느 날 감나무 집에 대대적인 공사가 있었습니다. 주인아저씨와 아줌마와 두 명의 아들까지 감을 지키기 위해 나섰습니다. 감나무 가지가지마다 기다란 막대기를 꽁꽁 묶어 하늘을 향해 높이 세웠습니다. 감나무 가지를 억지로 치켜올린 막대기들이 서른 개도 넘었습니다. 잘 익은 감들은 키 큰 농구선수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무도 따갈 수 없는 감들을 지켜보며 감나무 집 사람들은 빙글빙글 웃었습니다. 

담장 아래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달뜬 웃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해 가을, 햇볕 쨍쨍한 감나무 집 장독대에는 곶감이 잔뜩 걸려 있었습니다. 먹다 남은 감으로 감나무 집 사람들은 곶감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가을은 아무런 뉘우침 없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 이듬해도 감나무 가지마다 감꽃이 피어났습니다. 감나무 집 주인이 세워 놓은 막대기 때문에 감꽃들은 사람보다 하늘을 더 가까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감꽃을 실에 꿰어 감꽃 목걸이를 만드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감나무 집 앞을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감꽃이 많으니까 감도 많이 열릴 거야." 감나무 집 주인은 마당을 기웃거리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감나무 집 주인의 얼굴은 감꽃보다 화사했습니다. 얼마 후, 감꽃 진 자리마다 아기감이 조롱조롱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아무도 감꽃을 따가지 않았는데, 감나무에 매달린 아기감이 턱없이 적었습니다. 비바람에 맥없이 떨어지는 아기감도 많았습니다. 감나무 집 주인 얼굴은 고드름장아찌가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감나무엔 감이 몇 개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비밀을 알고 있는 건 감나무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잠1:31)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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