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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두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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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편지] 모두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 이철환 동화작가  
 

멀찍이 서 있는 암탉과 병아리들을 노려보며 뱀이 말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라. 밤이 오면, 너희들은 모두 끝장이다. 흐흐흐." 뱀은 풀숲에 똬리를 틀고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밤이 왔습니다. 암탉도, 병아리들도 모두 잠들었습니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암탉이 있는 곳으로 기어갔습니다.

"흐흐흐, 맛있겠다. 내가 밤에 올 거라는 걸 꿈에도 몰랐겠지?" 뭉클뭉클 웃고 있는 뱀의 눈빛이 서늘했습니다. 올빼미 한 마리가 느티나무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올빼미는 눈을 부라리며 뱀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뱀은 암탉과 병아리들이 있는 곳으로 거의 다가갔습니다. 뱀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 순간, 뱀의 기다란 몸뚱이가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올빼미의 뾰족한 발톱이 뱀의 몸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는 것을 뱀은 몰랐습니다. 뱀의 낭패스러운 비명 소리가 밤하늘을 흔들었습니다. 달빛에 달맞이꽃 터지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 늘 문제입니다. 내가 늘 문제입니다. 돌이켜보면 모두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별빛과 달빛이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개구리, 여치, 소쩍새 울음소리가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알을 품기 위해 나흘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는 암탉이 나의 선생님이었고,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내기 위해 아픈 허리도 꼿꼿이 펼 줄 아는 할미꽃이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사냥꾼으로부터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눈밭 위에 찍어 놓은 자기 발자국을 지울 줄 아는 너구리가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거센 바람을 탈 줄 아는 청보리가 나의 선생님이었고, 짓밟히고 짓밟혀도 꽃을 피워내는 질경이가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은비늘을 반짝이며 흐르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떼가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싸늘하게 죽어 가는 새끼 토끼를 온종일 혀로 핥아 살려 놓은 어미 토끼가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잘 익은 감을 따 먹으라고 슬그머니 가지를 내려주는 감나무가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사흘 동안 하늘을 날기 위해 4년이 넘도록 어두운 물 속 생활을 견뎌내는 장수잠자리가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 손길들이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견딜 수 없었던 치욕이 나의 선생님이었고, 사람들의 쓴소리가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건, 별똥별의 섬광처럼 짧은 거라고, 적혀 있던 첫사랑의 편지가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밤낮으로 펼쳐보는 성경책이 나의 선생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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