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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앙인의 회귀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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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회귀본능  

- 황형택 목사 (강북제일교회)
 

매주 설교를 해야 하는 목회자인 나에게 또 다른 과제 하나가 있다. '로뎀나무' 글쓰기다. 로뎀나무 아래서 엘리야는 쉼을 얻었지만 나에게 '로뎀나무'는 쉼이 아니라 짊어져야 할 또 다른 짐 하나인 듯하다. 7일이라는 주기가 얼마나 급하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되어 찾아오는 마감 날인지…. 누구는 미리미리 잘도 준비해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못되어 늘 마감 날에 쫓긴다. 오늘도 총회라는 모임 탓에 제주도에 머물러 있다. '로뎀나무' 보내야 할 시간이 되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시 한편 읽으며 쉬었다 가볼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박경리 선생님의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펼쳐 들었다.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고 말씀하실 만큼 소설가인 그분에게도 남다른 시심(詩心)이 가득 있었나 보다. 질곡의 삶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려내신 시여서인지 금세 읽힌다.

유고 시집에는 특별히 홀가분한 삶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따님이 시집 제목을 그렇게 잡았을까?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빚진 것도 빚 받은 것도 없어 홀가분하고"라고 말한다. 누구나 무거운 짐 지고 가는 인생길이라 신발끈 느슨하게 묶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인생 여행 누구나 꿈꾸지 않을까? 또 사설이 길다. 시 한편 읽으며 쉬어가자 하더니….

'일 잘하는 사내'라는 시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 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이 있다.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은, 회귀하는 연어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아련함이 묻어있고, 귀향길에는 왠지 모를 아스라한 행복이 있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진한 향수처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실패했어도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더 이상 기댈 곳 없어 정처 없는 인생은 돌아갈 곳을 갖지 못한 사람만의 아픔이다. 돌아갈 귀성길에 서 있을 수 없는, 한으로 눈물짓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 선생님의 시를 읽다 갑자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돌아갈 곳이 있는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이 내게 있어 참 행복하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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