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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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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편지]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 이철환 동화작가
 

아버지는 고물상을 하셨다. 아버지의 고물상에는 손님들 외에도 껌을 파는 사람이나 동전을 구걸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아버지는 정이 많으셨다. 그래서인지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열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기 남동생을 데리고 고물상 문 밖에 서 있었다. 껌 통을 들고 있던 여자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아버지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았다. 장갑도 끼지 않은 두 아이의 손은 이미 새파랗게 얼어 있었다.

아버지는 서둘러 가게 밖으로 나가셨다. 그러고는 아이들의 껌을 사며 물으셨다. "날도 추운데 점심들은 먹고 다니는 거니?"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직 못 먹은 게로구나.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아저씨가 라면이라도 끓여줄게." "저…괜찮은데…" 여자아이는 수줍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는 두 아이의 손을 억지로 가게 안으로 이끄시고는 아버지가 직접 가게 앞쪽에 간이로 만든 작은 방으로 아이들을 데려가셨다.

연탄난로의 뚜껑을 열고 라면 냄비를 올려놓으셨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근데 넌 몇 학년이니?" "5학년인데 지금은 일 년 쉬고 있어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 뒤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으셨다. 라면이 거의 다 끓을 무렵 아버지가 내게 말하셨다. "철환이 너는 잠시 방에 들어가 있거라." 나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말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이 또래인 나 때문에 혹여 마음이라도 다칠까봐 그리 하셨던 거였다. 잠시 후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들 가거라. 차 조심하고." 아버지의 얼굴이 조금은 슬퍼 보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아버지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앉은 방석 아래로 뭔가 울퉁불퉁한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석을 들춰 보았다. 그곳엔 껌이 놓여 있었다. 손때 묻은 노랗고 하얀 껌들을 여자아이가 방석 아래 가지런히 숨기고 간 거였다. 따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몇 시간을 팔아야 할지도 모를 그 귀한 껌 세 통을 아이가 두고 간 거였다. 분명 아버지의 호의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껌을 들고 얼른 밖으로 달려 나가셨다. 그러나 조금 뒤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는 껌이 그대로 들려 있었다. 아버지 얼굴은 조금 전보다 더 슬퍼 보였다.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 아이가 두고 간 껌들은 십자가 걸린 벽 아래쪽에 오래도록 놓여 있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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