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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요편지]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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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편지] 자전거 도둑  

- 이철환(동화작가)
 

어느 늦은 밤이었다. 고물상 마당에 나갔던 아버지가 눈이 휘둥그레져 헐레벌떡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여보, 누가 자전거 빌려갔어?" "아뇨!" "자전거가 없어졌는데!" "자전거가 없어져요? 가게 안쪽에다 들여놓지 않으셨어요?" "응… 설마 했지." 아버지는 몹시 언짢은 얼굴로 방문을 나가셨다. 산동네 이곳저곳을 살피고 온 아버지는 시르죽은 얼굴이셨다. 비록 녹이 슨 짐자전거였지만 사라져 버린 자전거는 아버지에게 더 없이 소중한 물건이었다. 

무척이나 뒤숭숭한 밤이었다. 추운 날, 학교를 마치고 교문을 나올 때였다. 학교 후문에서 한 아저씨가 오리궁둥이 같은 솜사탕을 팔고 있었다. 순간 내 시선이 솜사탕 아저씨의 자전거에 꽂혔다. 안장에 녹이 슨 모양새며 오른쪽 페달 반쪽이 떨어져나간 게 아버지의 자전거임이 분명했다. 나는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우리 학교 앞에 아버지 자전거가 있어요! 어떤 아저씨가 아버지 자전거에서 솜사탕을 팔고 있어요!" "뭐? 솜사탕을? 자세히 본거야?" "그럼요!" 나는 가쁜 숨을 할딱거리며 토막말을 했다. 아버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앞세웠다. 학교 후문은 아이들의 쫑알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아버지, 저기여. 저기 저 자전거요."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버지는 주저주저 몇 걸음 다가서다 주춤 뒤로 물러섰다. 솜사탕 아저씨는 자전거 옆에 쪼그려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 옆에 아기를 등에 업은 아주머니와 함께였다. 부부는 시들한 김치 하나로 추운 길거리에 앉아 허겁지겁 찬밥을 먹고 있었다. 솜사탕 아저씨가 슬픈 눈빛으로 아주머니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돈을 다 마련해야 할 텐데…. 수술비는 얼추 마련됐으니까 입원비 얼른 더 벌자고." 

솜사탕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엄마 등 뒤에서 잠든 아기의 새파란 얼굴을 어루만졌다. 솜사탕 아저씨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는 훙뚱항뚱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때 우두망찰하던 아버지가 내 손을 끌며 말했다. "가자! 저건 우리 자전거 아냐!" "우리 자전거 맞잖아요." "글쎄, 아니래도!" 아버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민주댈 수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뒤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방문 밖에서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여기 좀 나와 봐요." 나는 아버지를 따라 얼른 밖으로 나가보았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고물상 마당 가득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아버지의 자전거가 예수님처럼 하얗게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쌓인 눈 위로 누군가 살금살금 들어왔다 나간 발자국이 다문다문 찍혀 있었고, 검은 비닐봉투에 담긴 사과들이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빠알간 얼굴을 비비며 소복소복 흰 눈을 맞고 있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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