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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육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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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의 정치  

- 리처드 마우 (풀러신학대 총장)
 

20년 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대통령으로 어떤 사람이 선출되어야 하는가에 관해 한 잡지사에서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우리는 자기 이름을 밝혀서도, 또 대통령에 입후보할 만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서도 안 되었다. 단지 일반적 자질, 바람직한 기술과 덕목만을 이야기해달라고 부탁받았다. 나의 긴 글이 지면에 실렸을 때 누군가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내용인즉 그와 몇몇 친구들이 내가 쓴 글을 놓고 토론을 벌였는데 내가 에이브러햄 링컨의 입후보에 찬성한 것을 축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링컨이 이번에도 입후보한다면 난 그를 찍을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가장 고귀한 자질들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 가운데 대중 연설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목자처럼 어루만지고자 한 것은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전 국민적 치유의 필요성에 대한 링컨의 연설은 감동적이었다(시민들이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용서의 필요성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으면 이런 치유는 불가능하다).

얼마전 시편 72편을 읽으면서 문득 이 모든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다. 현재 거의 대다수 미국인들이 그렇듯 나도 정치에 물렸다. 한동안 대통령 선거철이 꽤 재미있었지만 최근에는 싫증을 느끼고 있다. 선거 운동 기간은 너무 길었고 토론의 질은 점점 저하되고 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이 필요했고 시편 72편은 내게 그런 위로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말씀은 장 칼뱅이 좋아했다. 그가 말한 '문관'(文官)의 직무가 매우 고귀한 소명임을 확증해주는 말씀이 바로 이 시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시 72:1∼4).

국가 지도자를 위한 직무 서술치고는 그리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시편 기자는 이어서 매우 인상적인 비유를 들어 정부의 총체적 직무를 묘사한다. 정치 지도자가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이" 되기를 그는 기원한다(6절). 이것은 칼뱅의 많은 추종자들, 특히 아주 '제한된 정부'를 주장하는 이들이 흔히 무시하는 역할이다. 정부는 양육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옛 스코틀랜드 장로교 신학자들도 이 문제를 강조했다. 그들은 국가 지도자를 '양부'(養父)로 묘사한 이사야(49:23)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했다.

오늘날은 정치 리더십에서 아버지 같은 역할과 어머니 같은 역할 사이에 우열이 논의되고 있는 추세다. 어느 쪽이든 공적인 영역에서 많은 양육이 시행돼야 한다. 국민들의 시민의식을 성숙하게 하고 공평과 정의에 대한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 정치의 한 직무다. 나는 이걸 희망하지만 에이브러햄 링컨의 재림에 대한 공상을 즐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까지 난 국가 리더십이 새로 베어낸 풀 위에 비처럼 임하는, 그런 때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번역 김춘섭 예수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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