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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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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소리  

- 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지난 주일 아침 예배를 마친 후 인사를 나누고 있던 장로님 한 분이 "목사님, 하늘 한번 쳐다보시죠."라고 했다. 그때 바라본 하늘은 너무 푸르고 높았다. 투명한 빛이 창공 너머 하나님 나라까지 연결된 듯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가을 하늘은 맑고 푸르다. 그런데 이 가을에 듣는 여러 소식은 그렇지 못하다. 소위 말하는 '베르테르 효과' 때문인지도 모르나 여기저기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에 관한 소식이 들린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혼란스럽게 하고 중국에서 날아온 '멜라민 공포'가 우리 식탁을 염려스럽고 불안하게 만든다. 이 모든 어두운 소식들은 우리가 이 가을에 들어야 할 소리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치지 않고 밀려오는 이 소리들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지쳐 있다'는 비명이다. 이제 더 이상 어찌해 볼 힘도, 방법도 없다는 체념의 소리들이다. 왜 우리 사회에 이토록 지친 사람들이 많을까?

성경에도 지치고 피로한 사람들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어둡고 칙칙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시대를 주도하면서 만인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사람들이 피곤에 지친 모습을 보여준다. 엘리야가 그 대표적이다. 그는 '그만 살고 싶습니다'고 호소했다. 왜일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권능 있는 위엄을 보여주던 선지자가 어느 날 갑자기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삶의 무기력을 호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자들은 엘리야의 탈진을 두 가지 원인으로 설명한다. 첫째는 너무 일이 많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정말 일이 너무 많았다. 아합이라는 권력자를 견제해야 했고, 창궐하고 있던 우상 숭배의 세력을 꺾어야 했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던 그 땅에 하나님의 단비가 내리도록 기도해야 했다. 돌보아야 할 버려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 모든 일을 감당해 나가기에는 엘리야도 부족했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한 가지 원인은 그가 너무 외로웠다는 점이다. 엘리야는 늘 혼자였다. 아합 앞에 설 때에도, 갈맬산 꼭대기에서도, 비를 위해 기도할 때에도 그는 혼자였다. 외로움은 삶을 더 지치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에게도 가까이 가지 못한다. 그만큼 불신과 개인주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홀로 있는 것이 쉽고 편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고독의 고통을 느끼게 하고 마침내는 견딜 수 없게 된다. 너무 많은 일과 홀로 있는 외로움은 우리를 탈진하게 하는 원인이다. 탈진한 사람은 아름다운 계절 가을의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삶이 얼마나 귀하고 멋진 것인지 파악되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짐을 좀 가볍게 하자. 좀 적게 가지고 적게 누리는 삶도 행복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집착하던 것들에서 해방되고 움켜진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짐이 가벼워야 삶에 안식이 깃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자.

마음을 열면 다가와 손잡아줄 많은 이들이 곁에 있고 우리 짐을 대신 져주실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결코 혼자가 아니다. 이 가을에 청명한 하늘 위에서 울려퍼지는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가 이것이다. ' 좀 쉬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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