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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생명의 열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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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열쇠, 예수 

- 황형택 목사 (강북제일교회)
 

이 글을 여리고에서 쓰고 있다. 예수께서 삭개오를 만나주셨던 여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마침내 들어가게 된 가나안의 첫 관문이었던 여리고 그 땅 말이다. 제1회 이스라엘 코스타 집회차 방문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한 번쯤 밟을 수 있을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던 음성이 혹시 내게도 들려올 수 있을까? 

주님께서 다니시던 곳에는 생명이 살아났다. 생명의 강물이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며 간절히 사모한 소경의 눈이 떠지고, 평생 저주의 무릎을 꿇고 살았던 자를 손잡아 일으키신 생명의 부요함이 예수님을 통해서 펼쳐졌다. 이젠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여기고 눈물로 통곡하던 가정에, 나사로가 살아난 기적의 현장에 감격하며 오게 된 것이다. 내가 그 현장의 주인공처럼 흥분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주님을 만나면 살아난다. 주님의 손을 잡으면 절망의 무릎을 일으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생명의 열쇠가 여기 있다. 삶을 굳게 닫고 있는 죽음과 절망과 좌절의 문을 열수 있는 열쇠가 바로 그분께 있다. 

어느새 잊혀져버린, 그렇게 떠들썩했던 학력 위조 파문으로 1년여 동안 무대를 떠났고, 고국을 등져 있었던 한 연극인의 아픔이 담긴 대담 기사를 보았다. 그 무섭고도 엄청난 파도가 몰려왔을 때 그녀에겐 자살의 충동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려왔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녀가 선뜻 대답했다. 일반 대중 잡지, 언론 매체에서 그녀는 너무도 즉각적으로 자연스럽게 말했다.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면 자살해도 몇 번 했을 거예요. 그러나 저는, 부족하지만 늘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고 싶거든요. 그리고 또 성경을 통해 어떤 고난도 결국 유익한 것이라는 걸 배웠죠. 학력 고백 후 평생 꿈꾸던 자유를 얻었죠." 

자살의 충동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삶의 굴레를 벗어던져버리고 싶은 순간, 삶의 멍에의 줄을 끊어버리고 싶었던 적이 어찌 없었겠는가? 그녀 말대로 자살을 해도 몇 번을 하려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를 붙잡고 있었다. 몇 번이고 죽어버리려는 충동을 이겨낼 희망의 끈을 잡고 있었다. 그 희망만이 우리를 더 좋은 삶으로 이끌고 간다. 어떤 고난도 유익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소망만이 '이제는 끝이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라며 죽음의 충동으로 질주하는 인생의 고삐를 되잡는다. 그래야 우리는 살아난다. 

당신도 그녀의 고백처럼 믿음을 가진 예수의 사람인가? 그렇다면 부족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유혹할 때 하나님 보시기에 더 아름다운 삶을 꿈꾸어보라. 죽음은 열쇠가 아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진짜 열쇠다. 손에 쥐고 있다면 생명이 굳게 닫힌 문 앞에 서서 담대하게 열쇠를 꽂아라. 죽음으로 이끄는 어떤 고난도 결국 유익하다는 말씀에 굳게 서서 말이다. 자유로워지며 살아날 것이다. (/여리고에서)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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