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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요편지] 베개 저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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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편지] 베개 저금통           
 
- 이철환(동화작가)
 

'느티나무 희망원'은 오갈 데 없는 할머니들이 살고 계신 곳이었다. 그곳에 계신 할머니들은 자원봉사자들을 언제나 곰살궂게 반겨주셨다. 햇살처럼 골골이 주름진 할머니들 얼굴은 감자꽃을 닮았다. 쫄랑쫄랑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의 천진한 미소를 닮았다. 소록소록 가랑비 뿌리던 날 그곳에 살고 계시던 이춘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11년 동안이나 외로운 할머니들을 돌봐주시던 김영님 아주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셨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제일 먼저 베개부터 뒤져요. 할머니들 베개를 뒤지면 천원짜리, 만원짜리 돈이 한 줌은 나오거든요. 이곳에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할머니들께 위로금으로 주고 가신 돈이에요. 금쪽 같은 그 돈을 할머니들은 한 푼도 쓰시지 않고 베개 속에 꽁꽁 감춰 두세요." 

김영임 아주머니는 깊은 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이곳에 계신 할머니들 참 가엾은 분들이세요. 오늘 돌아가신 이춘분 할머니도 가족이 제일 많이 보고싶으셨을 거예요. 성품도 서글서글하시고 참 좋은 분이셨는데…." "할머니들에게 가족이 있나요?" "가족이 없는 할머니도 몇 분 계시지만 아들 딸 다 있는 할머니도 많으세요. 늙은 부모 짐짝처럼 여기는 자식들하고 사는 것보다 여기가 훨씬 더 편하고 좋으시대요." "그럼, 자식들은 자주 찾아오나요?" "웬걸요. 거의 오지 않아요. 몇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자식들이 있긴 하지만, 정말 몇 년에 한 번 명절 같은 때만 잠깐씩 다녀가곤 해요." "그랬군요. 자식들이 있는 할머니들도 계시는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루나무에 걸린 연을 바라보듯 마음이 답답했다. 잠시 후, 김영임 아주머니가 말했다. "드시고 싶은 것 하나도 못 드시고 할머니들이 베개 속에다 왜 그렇게 돈을 모으신 줄 아세요?" "왜 그러신 거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제나 저제나 손자들 올 때를 기다리신 거예요. 보고싶은 손자 오면 맛있는 과자라도 사주고 싶어서요. 당신을 버린 가난한 자식들 손에 용돈이라도 조금 쥐어주고 싶어서요…." 

아주머니는 울먹였다. 아주머니는 슬픔을 애써 지우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는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고 새벽예배도 거르지 않으셨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오늘은 아무도 오질 않네요. 손자들도, 아들 딸들도…. 하루를 천 년처럼 보내며 자식과 손자들을 기다리셨는데…." 아주머니 얼굴을 타고 내려온 눈물이 낡은 장판 위로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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