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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숨김이 미덕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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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이 미덕인 시대  

- 김흥규 목사 (내리교회)
 

우리 시대에 큰 스승이 드물다고 말한다. 우리 감리교회만 하더라도 교단장 당선자 시비로 큰 혼란을 겪고 있지만 이를 중재할 원로가 없는 듯 보인다. 물밑으로는 어떤 논의들이 오가는지 몰라도 이 난국을 타개하는 데 결정적인 조언을 해줄 스승은 없어 보인다. 기독교계와 사회 전반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스타는 많아도 참 스승은 찾기 어렵다. 왜 그럴까? 

숱한 답변들이 가능하겠지만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모든 것이 까발려져 내밀한 공간이 사라진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열리면서 개인의 숨겨진 부분이 낱낱이 발가벗겨져 더 이상 신비한 구석이 남아나지 않게 되었다. 한경직 같은 옛 스승들이라고 해서 왜 약점이 없었겠는가마는 그들은 그래도 정보가 매우 더딘, 아날로그의 시대를 살았다. 주변에 있는 이들이나 단점을 알았을 뿐, 멀리에서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은폐된 영역이 훨씬 더 많았으며 워낙 출중한 인품이나 장점만이 입소문이나 인쇄 매체를 통해 회자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숨겨진 영역 때문에 그마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 시대에는 조금이라도 실수할라치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제주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까지 퍼질 수 있다. 유명 인사가 될수록 그 노출의 정도는 더욱 심해져 매순간 추적을 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교단의 내홍을 해외에 있는 이들이 훨씬 더 소상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꽤 괜찮은 지도자라고 해도 속속들이 파헤쳐져 신비의 영역이 남을 여지가 없는 시대이다. 

루터의 말대로 하나님은 왜 '숨어계시는 하나님(Deus Absconditus)'일까? 눈앞에 보이면 금방 싫증 나기 때문이 아닐까? 은밀히 계시기에 더 궁금하고 더 신뢰가 가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성(性)도 그렇다. 다 여는 것보다는 적당히 감추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아 4:12).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극찬한 내용인데 동산과 우물, 샘은 모두 성애의 기쁨과 관련된 여성성을 상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잠근' '덮은' '봉한'과 같이 폐쇄를 뜻하는 형용사들이다. 성의 기쁨은 외부인들에게는 철저히 닫혀야 하고 오직 신랑에게만 열어젖혀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도 숨김의 미학은 두드러진다. 

더 빨리, 더 많이 까발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 더 더디 가고, 더 숨기는 것이 훨씬 더 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첩경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큰 스승들은 많다. 다만 우리 시대가 신비의 영역을 남겨두려 하지 않기에 스승이 없어 보일 뿐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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