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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억울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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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인생  

- 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모 정치인이 자신의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억울하다"고 항변하자 검찰이 "여기 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 억울해한다"고 해 그 정치인을 머쓱하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시중에 떠돈다. 하기야 세상에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어디 그뿐이랴? 사실은 참으로 억울한 사람도 있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하지만 주변은 통쾌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어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성경에 참으로 억울한 사람 하나가 소개된다. 공관복음에 모두 등장하는 그는 부자이며 청년이었고 고위 관료였다. 다른 사람이 다 부러워하는 조건을 구비한 아주 잘 나가는 젊은 정치인이었고 청년 기업가였다. 모든 율법을 어려서부터 잘 지키면서 자기 관리에 철저를 기한 보기 드문 젊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화려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만난 뒤 매우 슬퍼하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러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도무지 슬픔과 관련 없는 삶의 조건을 갖춘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슬퍼하고 근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그를 슬프고 근심 어리게 했을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가 재물이 많은 연고로 슬퍼했다고 기록한다. 문제는 그의 탐심이었다. 겉으로는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듯했으나 사실은 율법의 근본인 이웃사랑을 외면하면서 자기 탐욕의 충족을 위해 인생을 영위하는 사람이었다. 탐심은 우리를 후안무치한 사람이 되게 하고 습관화된 탐심은 마치 당연한 삶의 철학인 것처럼 위장되기도 한다. 그래서 라인홀드 니버 박사는 "탐심은 인간 본성이 아니다. 탐심은 본성에서 파생된 영혼의 질병이다"라고 진단했다. 

겨울에 얼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만큼, 여름에 부패하지 않기 위해서도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탐욕은 언제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영혼의 질병이다. 앞서 말한 성경의 부자 청년은 탐욕을 당연시하고 자기 권리로 생각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뭔가 자기 삶이 마치 서걱거리는 모래위에 서 있는 것처럼 불안하여 "영생을 얻고자 합니다"라고 주님 앞에 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영생이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는 것이라면 탐심의 욕망을 품고서는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기가 어렵다. 또한 탐심은 영생에 어울리는 모습이기보다 이 땅위의 치졸한 아귀다툼에 더 어울리는 심성이다. 아마 그래서 예수님은 그 탐심부터 버리고 오라는 의미에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듯하다. 

가을이 깊고 겨울이 임박했다. 그런데 경제는 어렵고 모두는 잔뜩 긴장하고 움츠러든다. 그래서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의 겨울이 더욱 염려스럽다. 이 살얼음판과 같은 세계적 위기의 시기를 조심조심 건너가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이해한다. 그러나 탐욕을 경계하자. 그렇지 못하면 더 혹독한 경비를 지불해도 수습 못할 위기를 만들게 된다. 이 시대를 살면서도 슬퍼하고 근심하고 살아야 하는 억울한 삶이 되지 않으려면 탐심을 버리고 이웃들을 바라보는 영생 얻은 자다운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감사절을 보내면서 느끼는 충동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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