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사랑의 힘

첨부 1


사랑의 힘  

- 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오래 전 천국으로 가신 할머니 집사 한 분이 계셨다. 곱게 늙은 이 할머니는 고운 모습만큼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다 깨끗하고 단아하셨다. 그런데 80세를 훌쩍 넘기시더니 그렇게도 두려워하시던 치매 현상이 찾아와 주변을 힘들고 당혹스럽게 하셨다. 한 가지 특이 현상이 생겼다. 모든 사람을 몰라보지만 오래 전 6·25 전쟁 때 세상을 떠난 남편은 사진으로 알아 보셨다. 그것도 약혼식 때 찍은 사진만…. 누구냐고 물으면 "내 애인이야"라고 수줍게 대답하시곤 얼굴에 홍조가 가득 생기기도 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웃음보다는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가득 내 눈에 고이는 감동이 있었다. 가장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주고받았던 시절의 순수한 사랑만 이분의 기억에 남은 것이리라 여겨졌다. 

요즘도 가끔 받는 전화나 편지 중에는 이십대 초반 야학에서 가르친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제자들(?)의 소식이 있다. 암울했던 절망의 시대에 주고받았던 사랑과 삶의 호흡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훈훈해진다며 지금껏 고마워한다. 이유는 한 가지이다. 순수했기 때문이다. 

이런 순수 사랑의 이야기가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행적에 나온다. 그는 극심한 가뭄의 시절 사르밧의 한 과부 모자를 찾아간다. 마지막 남은 양식을 먹고 모자가 함께 죽으려 한다는 한 서린 말을 듣고도 이 철없는 선지자는 그 양식을 자신이 먹어 치운다. 이 무슨 횡포이며 이기심인가? 흔히 이 구절은 설교자들이 '목회자들을 잘 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설교하는 본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목회자들이 양심도 없는 이기주의자가 되어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해석이 막힌다. 여기에는 선지자의 열정과 사랑이 있다. 당시는 국가적 재난의 시기였다. 삼년 반이나 가뭄이 계속되고 풀뿌리마저 타들어간 들녘엔 먹을거리는 구경을 할 수도 없었다. 마치 지옥의 문턱에 선 것처럼 모두가 희망을 버렸다. 이 모자도 모진 마음으로 "이젠 우리도 죽으려 합니다"라고 의지를 밝힌다. 이 상황에서 지도자인 엘리야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권력의 최상부를 찾아가 질타하고 정책 대안을 개발하기 위해 관계자들을 만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의에 참석하는 등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죽음을 결심하고 있는 이 딱한 가족을 찾아갔다. 그리고 대화를 시도하고 해법을 함께 모색한다. 여기에 이 절박한 모자의 남은 양식을 자기 배를 채우려는 몰염치한 선지자의 이기심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정을 건져내려는 선지자의 목회적 사랑이 긴박하게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함께 나누고 의논할 대상이 없으면 절망적 상황은 죽음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혹독한 계절이 온 듯하다. 이 시기에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절망하고 있는 사람을 살려내려는 순수열정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 위기의 시기에 순수 사랑으로 다가가 준다면 이 사랑은 모든 기억이 다 사라지도록 오래 기억 속에 남는 일이 될 것이리라.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