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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비함을 회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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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함을 회복하십시오  

- 황형택 목사 (강북제일교회)
 

신비함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타락한다. 신비함을 던져버린 종교는 비루(鄙陋)하다. 신비함은 신비함 그 자체로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 신비를 모르는, 그리고 더 이상 신비함이 우리에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발버둥치면서 다 까발려버리려는 사회는 불행하다. '신비주의'가 아니라 '신비'함을 놓치면 이 땅의 모든 것은 의미와 가치가 아니라 현상과 외형과 껍데기로 남고 만다. 모든 것이 사고파는 물건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불행하다.

프랑스의 사상가 레옹 블로아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빵이 없이도 살 수 있고, 집이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리고 돈이 없어도, 술이 없어도, 심지어 사랑이 없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신비함'이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다." 빵으로 배부름을 해결한다고 인간이 인간다운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집의 크기로 한 인간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할 수도 없다. 인간의 가치는 결코 수치와 수량화로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비함이라는 막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존재이다. 신비는 우리의 존재를 끊임없이 가치 있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힘이다.

웹진 '음악취향 Y'의 칼럼니스트 최지호씨는 요즘 세대를 아이돌 가수들의 노랫말을 통해 이렇게 평가했다. "10년 전 아이돌 가수들이 추상적인 가치를 에둘러 표현했다면 요즘에는 좀 더 구체적이고 날 것의 언어로 욕망을 드러내거나 성적 행위를 묘사한다"고 말이다. 신비함이 사라져버린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숨길 필요도, 숨겨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날 것으로' 그대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감정에 더 정직한 삶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니다. 삶은 날 것으로 욕망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거룩함과 신비함이 가득하다. 신비의 불꽃에 우리 삶은 맞닿아 있다. 하나님의 영으로 빚어진 인간은 그 속에 말할 수 없는 영혼의 진동을 경험하고 살아가게 되어있다. 거룩한 음악이 들려올 때 우리의 가슴은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신비의 진동에 휩싸인다. 음악의 진동을 넘어선 그 무엇에 사로잡히고 만다.

요즘 외적 팽창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추상적인 가치는 내던져버리고 눈에 보이는 값어치만으로 세계를 재단하려던 시도에 거대한 브레이크가 작동된 것은 아닐까? 바깥세상만 내다보다가 신비로 가득한 내면의 영혼을 무디게 만들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신비를 담은 그릇을 날 것의 욕망으로만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자. 바깥세상은 이제 조금 내려놓고 하나님의 신비한 그 세상으로 발걸음을 한 번 더 내디뎌 보자. 조지 모리슨의 말처럼 "비록 증명할 수 없어도 하나님이 우리 중에 누구와도 멀지 않으시고, 모든 바람 속에 호흡하시며, 모든 외로운 골짜기를 사랑으로 품고 계심"을 느껴보자. 한 장의 달력만 남겨두게 된 11월의 마지막 즈음에!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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