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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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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길

나는 지금도 시장에 갈 땐 잠시 멈추고 시장 구석진 곳을 바라보곤 한다. 
잊히지 않는 지난 추억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월남하였다. 신앙 하나로 결혼하고 자식들을 낳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습관적으로 다녔을 뿐이다. 
신앙이 없는 남편과 결혼하여 신앙생활과는 멀리 떨어졌었다. 
아이들 소풍이라 시장에 갔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뿜어대는 매연으로 숨이 막혔다.

그런데 시장 길 모퉁이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말해도 여기서 장사하십니까?”
“빨리 치워요.”
“미안합니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얼른 뛰어가 사람들을 헤치고 들여다 보았다. 
단속반 아저씨들이 우유와 도넛, 김밥 등을 파는 포장마차를 뒤집어 엎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60이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그것을 지키려고 몸부림쳤다.

“이곳에 오지 않겠습니다. 포장마차를 부시지는 말아요.”
다리를 절고 있는 아주머니는 너무나 점잖게 애원했다.

계란은 깨어지고, 우유는 내팽겨졌다. 맛있어 보이는 도넛은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굴러갔다. 
사정없이 부수고 버리는 단속원들을 보고 포장마차 아저씨는 멍한 표정으로 땅만 보고 있었다. 
불편한 몸으로 아주머니만 단속원들에게 애원했다.
“제발 포장마차는 부시지 말아요.”

단속반원은 다리에 붙은 지렁이를 사정없이 떼어내듯 다리를 붙들고 있는 아주머니를 내팽개쳤다. 
아주머니는 길거리에 쓰려졌다. 

그 때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젊은 양반, 나이든 양반들이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하는 짓인데 그만해요.”
떨리는 목소리였다.

“왜 남 일에 상관하시오. 우리도 하고 싶어서 하나요. 시키니까 하지요.”
“그래서 부수고 버려야 속이 시원하겠소. 당신들은 애미 애비도 없어요.”

모여든 사람들은 할아버지 말에 동조했다.

단속반원은 부시고 흩던 손길을 멈췄다. 
신사복을 한 할아버지가 걸어오더니 땅에 떨어진 우유를 다섯 개 주었다. 
그리고 쓰러진 아주머니에게 가서 지폐 몇 장을 내밀었다. 
아이 엎은 아주머니가 베이지밀 두병을 주웠다. 
멍하니 땅만 바라보고 있던 아저씨 주머니에 만원을 넣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여들어 남아 있는 물건들을 들고 지폐를 꺼내었다. 
나도 계란 몇 개와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 도넛을 다 시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렇게 나는 시장에서 다리가 불편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시장을 갈 때마다 들러 그 아주머니의 단골이 되었다.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노점상에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나오지 않았다.

어느 때는 아주머니 홀로 나와 있을 때가 있고 어느 때는 아저씨 홀로 나와 있었다. 
얼굴이 익어지고 친해지게 되어 아주머니 홀로 있는 날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나이도 들고 몸도 불편하신데 자녀들이 없어요?”
“자식들은 없어요. 두 늙은이만 살고 있어요.”
“젊을 때는 무엇 하셨는데요.”
“뭐......”

아주머니는 무슨 말을 할듯하다가 하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참 마음씨가 고운 것 같은데 나랑 같이 좀 좋은 일 해보시지 않을래요.”
“무슨 일인데요.”
“수요일에 시간 있어요? 나랑 같이 가면 되요.”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이 기숙하는 요양원이었다. 
아주머니는 자신보다 몇 살 위인 듯한 노인을 목욕시켜 주었다.
“권사님, 나 알아 보겠어요.”

눈만 멀뚱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권사님, 사모여요.”

노점상을 하던 아저씨는 목사였고, 아주머니는 목사 사모였다. 
차가 없어 내가 차로 모시고 계속 함께 봉사하러 다녔다.
“사모님, 그런데 사모님이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계시는 그 권사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계속 같이 다니자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권사님 우리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우리 목사님 중년에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개척했지요.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으로 인해 교회는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장애를 앓고 있어 장애인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봉사했는데 하루 종일 시설에 가서 봉사하다 보면 너무 몸이 피곤하여 새벽기도회를 나가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은 365일 새벽기도를 빠진 적이 없으셨지요. 
왜 사모가 새벽에 기도회에 나오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교회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뭐 그게 그렇게 큰 문제라고 그렇게 시비를 했데요.”
“그 때 교회가 부지를 사서 건축하려고 했거든요. 부담을 피할 명분을 찾은 것이지요. 
권사님이 회계를 맡고 있었는데 결국 나를 공금 횡령으로 고발해 버렸습니다. 
해외에 교회를 건축하는데 선교비를 내 통장에 넣었다가 선교사님께 드렸는데 
통장에 넣어 놓았지 선교사님께 보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졌지만 교인들이 오해하고 그 문제로 거의 다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목회를 접었습니까?”
“동네에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려 전도 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이사와 노점상을 하며 새롭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왜 그 권사님을 돌보고 계셔요.”
“처음에는 못 견딜 정도로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원수까지 사랑하시라고 했지 않습니까? 마지막까지 돌 볼 생각입니다.”

나는 그 교회에 등록하여 다시 신앙 생활하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3 가정 밖에 되지 않았다. 
한 가정이 이사 가자 두 가정만 남았고 목사 부부는 우리에게 부담주기 싫다고 
교회 전세금을 권사가 머무는 시설에 기탁하고 교회를 떠났다.

(/김필곤 목사 콩트집 하늘 바구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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