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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길로 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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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주변에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고집불통의 사람이 있으면 여러 사람이 힘겹고 괴롭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자기 편견을 절대 진리처럼 신뢰하거나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는 물러설 줄 모르는 편협함과 이기심을 보이기 쉽다. 그러나 때로는 신앙인들에게 양보와 타협을 모르는 강골 정신이 필요할 때가 있다. 왕하11장에 나오는 여호야다 제사장은 이런 경우의 대표 격이다. 

당시 유다 왕국은 아달랴 여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유다왕국의 유일한 여왕이면서 유혈혁명으로 왕권을 찬탈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제사장 직무에 전념하던 여호야다는 이 사실을 묵과할 수 없었다. 잔혹한 살육의 시기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 살배기 어린왕자 요아스를 6년이나 숨겨 키웠다. 그리고 마침내 아달랴를 축출하고 일곱 살이 된 요아스를 즉위시켜 새 역사를 열었던 사람이다. 그릇된 역사에 굴복하거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험한 외길의 정도를 걸어간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되는 아인슈타인은 2차 세계대전 중 누가 히틀러의 잘못된 길을 가로막을 것인가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학자들에게 기대를 했으나 하이데거(Heidegger)가 변절하고 나치에 협력하면서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언론인들에게 희망을 가져보았으나 얼마 못 가서 모든 독일 언론들은 히틀러 찬가를 앞 다투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치 못했던 항거가 뜻밖의 곳에서 터져 나왔다. 평소 그가 무시하고 있었던 교회였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나 그 저항은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가 역사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인슈타인은 훗날 '교회는 거인처럼 일어나 정의와 진리와 자유를 수호하였다'라고 말하여 교회를 향한 그의 존경심을 표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길로만 가신 분이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유혹도 거절하시고 왕이 되시라는 사람들의 제안을 사양하시면서 한 길로만 가셨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적이 생겼고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예수님은 타협 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집중하셨다. 그렇게 십자가를 향한 외길을 걸으시면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선언하심으로 외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당신의 영광으로 여기셨다. 

어쩌면 오늘의 교회는 지나치게 세상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여 자기중심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뜻 찾기에 진지하지 못하여 진리를 사수하는 자부심까지 흔들린다. 교회는 세상의 풍향계가 가르치는 바를 따라 입장을 정하는 시대의 갈대가 아니다. 급류처럼 휘몰아치는 세속의 흐름 속에서도 올곧은 자세로 굳게 서서 역사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역사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그런 길은 험하고 좁아서 찾는 이가 많지 않고 세상과 잘 조화되지도 않아서 비판받거나 경멸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의 뜻만 따름이 우리의 도리이며 역사에 대한 우리의 책무이다. 그리고 그리해야 이 세상이 교회를 존경과 신뢰의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게 된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기독자와 교회가 걸어야 할 좁고 험한 길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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