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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分)과 격(格), 그리고 주님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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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남 목사(시드니 샬롬장로교회).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민담집, 흥부전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야무진 부자 형에 비해 여러 모양으로 모자라고 모질지 못한 동생은 이리 저리 치이고 고생하며 살다가, 다리 부러진 제비를 고쳐 주고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어 그 박을 켜서 일확천금을 얻고 거부가 되었다. 

우리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마음을 착하게 먹고 살면 언젠가 ‘쨍’하고 해 뜰 날이 반드시 온다고,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부자가 된 흥부는 얼마 안 가서 가난에 맺힌 한의 상징인 초가를 헐고, 팔작 지붕의 고루 거각을 짓고 양귀비 같은 첩을 얻어 호사를 떨며 산다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그래도 그의 지난날의 맺힌 가난의 한이 얼마나 사무쳤을까? ‘이젠 돈도 좀 있다하니, 자신의 돈을 가지고 좋은 집에 비단옷 걸치고 사는 것이 많이 흠이 되랴’, 하고는 좋게 봐 주려는 분위기도 있다. 부자가 된 흥부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온갖 거드름을 피우다가 결국에는 일자무식인 주제에 집에 으리번쩍한 서재를 차리게 된다. 

근사한 책상에 지,필,묵 등의 문방사우를 갖추는 것에서 시작하여, 책장에 대학, 중요, 논어, 맹자, 시전, 서전, 주역 등 사서삼경까지 갖추고는 허세를 떨었다고 한다. 흥부전의 이 대목은 한국 사람들의 한 일면을 잘 고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자기가 처한 상황 혹은 자기의 능력에 맞춰 적절하게 삶을 꾸려가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분수’ 혹은 ‘분’이라 말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에게는 나의 능력과 처지를 말하는 ‘분’에 따라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어찌 보는가? 하는 격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격은 곧 품격을 말한다. 

이는 자기 기준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식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정승은 정승의 품격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때의 품격은 좋은 의미에서 소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공인정신’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또는 형편은 안되지만, 정승이니까 다른 사람들의 보는 눈도 있고 하니 이 정도는 걸치고, 부조하고, 행색하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데서 나오는 허세일 수 있다. 그런데 그 흥부전에서 고발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그 품격의 해석에 관한 후자 쪽 해석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급격한 경제 성장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고, 이제는 예전의 새마을 운동이니, 보릿고개니 하는 이야기가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됐다. 그러나 보니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흥부 근성’이 아닌가 싶다. ‘내 형편과 능력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삶을 꾸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염려하며 삶을 포장해 간다. 이러한 행태가 걱정스러울 만큼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좀 먹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할까’ 하는 생각에서 원천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또 그런 문제에 완전히 둔감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좀 무식하고 힘든 세월을 보냈지만, 느즈막에 문맹을 벗고, 지식 탐구의 열을 고취하려는 열의 자체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흥부 같은 사람이 서재에 읽지도 않는 전집류를 잔뜩 장식용으로 꽂아 놓고, 칠 사람도 없는데 그랜드 피아노를 가져다 놓고, 그것으로 자기가 품격 있고, 교양 있는 사람인양 과시하려는 풍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제 며칠 있으면,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이 고난의 계절에 사랑하는 영혼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감사가 회복되고 삶에 대한 새로운 부활의 희망이 싹트길 원한다. 옛날 가난하게 살았던 시절에 대한 보상으로 응접실에 값비싼 명품들로 채우지 말고, 또 옛날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한 회한으로 읽지도 않을 명작집들로 거실 서재만 장식하지 말고, 외롭게 파리해져 가는 영혼의 거실과 응접실에도 내실있게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속사람을 넉넉함으로 채우며, 주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마음으로 따라가길 원한다. 이 고난의 절기에 내 영혼의 분수와 품격이 어디쯤 와있는지 돌아보며, 격을 좇아 무리수를 두며 허겁지겁 살지 말고, 분을 따라 감사하며 작은 여유를 나누며 살기를 다짐한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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