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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담의 불순종과 땅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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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명중(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별세했다. 몇 개월 전 선생의 집에 초대받아 손수 끓인 곰국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선생은 횡성 소시장에서 소뼈를 사서 끓여도 옛날 곰국 맛이 안 난다고 했다. 아마도 소들이 먹는 사료 때문일 것이다. 땅에 화학비료를 뿌려대니 식물이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영양이 지표(地表)에 있으니 뿌리가 수고를 하면서 땅속 깊이 내려가지 않고, 식물이 편하게 열매를 맺으니 깊은 맛을 낼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런 무기농으로 만든 사료를 먹고 자란 소 역시 깊은 맛이 날 리가 없다는 게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아담이 따르지 않아 벌을 받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에게 직접 벌을 내린 것이 아니라 땅에 벌을 내렸다. 저주받은 땅은 척박하게 되어 가시덤불이나 엉겅퀴와 같이 먹을 수 없는 식물만을 내게 되었다(창 3:18). 이제 인간은 얼굴에 땀을 흘리며 수고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땅에 벌을 내린 것은 아담의 경우에 한정되지 않는다. 카인의 경우에도 그랬고, 노아의 홍수 때도 그랬다(창 4:11∼12, 창 6:13). 

땅이 벌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과나무에 사과가 수천 개씩 달리지 않고, 땅속에 철이나 석회석이 무한정 묻혀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땅의 생산성이 제한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인간이 받은 벌이고, 그래서 인간은 이 벌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인간은 땅에 화학비료를 붓기 시작했고, 산을 파헤쳤고, 갯벌을 막아 땅을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더 많은 열매를 위해 농약을 뿌려대고 유전자도 조작했다. 땅의 생산성이 올라가니 삶이 풍요로워졌다.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인간의 탐욕은 더해져서 땅을 훼손하는 정도가 아니라 파괴하는 수준이 되었다. 박경리 선생이 '생명의 아픔'이라는 책에서 '사방에 충만한 생명의 소리를 듣는 것이 반갑지 않고 몹시 괴롭다… 이제는 꿩 우는 소리에 가슴이 아프다. 어디 가서 저 새들은 보금자리를 만들 것인가 싶어서…'라고 토로할 정도가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벌을 교묘하게 피한 꼴이 됐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벌을 주지 않고 땅에 벌을 준 이치를 생각해 보면, 땅을 착취하고 훼손해서 우리 세대들이 누린 풍요의 대가로 우리 후손들이 몇 배로 그 벌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이 전에는 듣지도 못했던 병들이 발생하는 것도 땅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제 인간과 땅(자연)을 하나로 인식하고 공생하는 세계관과 경제관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땅을 회복시키면서 소박한 삶을 소망해야 할 때다. 그런 가르침을 준 박경리 선생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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