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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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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피해의식은 실제로 피해를 당한 사람이 느낀다기보다는 이기적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조그만 일을 시키면, '내가 왜요?'라고 묻는다. 왜 그 일을 내게만 시키느냐, 다른 아이들은 안하는데 유독 내게만 시키느냐는 항의성 질문이다. 비교의식과 희생하는 것은 바보라는 의식의 결과다. 

피해의식이란 자기 내면세계가 병든 사람의 의식 상태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포도원 품꾼 비유가 나온다.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감을 준다. 모두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한 데나리온을 약속한다. 3시, 6시, 9시, 11시에도 놀고 있는 일꾼들을 부른다. 당시에는 실업률이 높았는가 보다. 주인이 일꾼을 써 준 것은 매우 고마운 일로 묘사된다. 그런데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부터 아침 일찍 온 사람까지 모두 약속한 1데나리온을 주자 먼저 온 사람이 원망한다. 한마디로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온 사람도 놀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된 은혜의 수혜자이다. 그런데 l시간 일한 사람과의 비교해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서 l시간 일한 사람이 은혜를 더 받은 것이지, 아침 일찍 온 사람이 피해자는 아닌 것이다. 

독지가가 은혜로 5명의 학생에게 아무 조건 없이 100만원씩 장학금을 주었다고 하자. 은혜를 베푼 것이다. 그런데 그 중 한 학생에게는 200만원을 주었다. 한 사람에게 은혜를 더 베푼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100만원의 장학금 받은 학생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지 피해자는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피해의식을 갖는다. 잘못된 생각이다.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한다. 요즘은 영화 속편이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역추적한다.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양들의 침묵' '한니발' 등에서 인육을 먹는 한니발 렉스가 등장한다. 그렇게 잔혹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한니발 라이징'에서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한니발 렉스는 가족을 잃었다. 여동생은 굶주린 러시아 군인에게 잡아먹힌다. 그는 여동생을 끓인 국물을 억지로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하나씩 죽여서 잡아먹었다. 과연 이것이 합리화할 수 있는 일인가? 

이런 합리화는 일반인에게 어리광으로 나타난다. 자기가 잘못된 것을 피해의식으로 합리화한다. 내 과거의 아픔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다는 동정을 요구한다. 병든 모습이다. 

품꾼의 바른 자세는 은혜 받은 것을 감사하는 모습이다. 놀고 있는 사람을 데려다 써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하나님이 기회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사람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주인은 모든 사람에게 약속대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약속을 어기고 반 데나리온을 주었다면 원망하고 항의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약속을 지킨 주인에게 무례하게 공격한다. 이것은 또 다른 모습의 불의이다. 주인은 불공평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관대한 사람이다. 한 데나리온은 한 가족이 하루 살 수 있는 비용이라고 한다. 

1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최저 생계비에 해당하는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이것은 주인의 관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더 선행을 베푸는 일에 시비 거는 사람이 오히려 문제 있는 사람이다. 감사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모순이 없다. 은혜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관대한 주인을 칭송하게 된다. 이기심은 우리의 판단을 마비시키고, 엉뚱한 불공정을 제기하는 모순적 행동을 하게 한다. 엉뚱한 피해의식과 자기합리화를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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