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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독교 교사로 가르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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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삶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길 소망하며.. 
 
- 김호정(새이레기독학교 유아교사)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 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

아이들만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새이레학교 예배실 가득히 울려퍼지고, 아이들은 조금은 웃긴 찬양 율동에 신이나 모두들 펄쩍 펄쩍 뛰고 있다. 딱 두 아이들만 제외하고....

작년에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학교에 처음 오게 되어 익숙하지 않은 찬양들과 환경 때문인지 예배시간에 송장처럼 매일 서 있기만 하였다. 처음에는 뒤로 다가가 유아의 팔을 들어 찬양 율동을 하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쌍둥이는 절대로 입도 뻥긋하지 않고 며칠을 예배시간마다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신기한 것은 다른 활동시간에는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하루는 쌍둥이 형제 한 명씩 따로 교실에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무슨 시간이예요?”
“예배드리는 시간이요.”
“그런데 00이는 찬양시간에 왜 가만히 있었어요?”
“......”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목소리도 주시고, 팔도 주시고, 눈도 주시고, 발도 주셨을까요?”
“하나님 찬양하라고요.”
“맞아요. 하나님은 00에게 목소리도 주시고, 팔도 주시고, 눈도 주시고 발도 주셨어요! 
그럼 왜 주셨을까요?”
“찬양하라고요.”
“맞아요, 하나님께서 00의 찬양을 받고 싶으셔서 모든 것을 주셨는데 00가 찬양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 어떠실까요?”
“하나님이 절 싫어하세요.” 
마지막 내 물음에 숨도 고르지 않고 바로 ‘하나님이 절 싫어하세요’라고 표현하는 아이의 대답에 당황하였다. 
“아니, 하나님은 그래도 00를 사랑하셔요. 그래서 00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까지 기다리시고 지켜보고 계셔요. 그리고 00가 ‘찬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라고 기도하면 찬양할 수 있는 용기도 주셔요.” 

내 대답이 자신이 예상한 대답과 달랐는지 아이는 내 대답에 두 눈이 동그레졌다. 나의 대답에 놀란 듯했다.

“하나님이 00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너무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모두 다 주셨잖아요. 하나님은 00가 용기를 내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눈도 동그랗게 뜨시고, 귀도 쫑긋 세우셔서 우리 00가 ‘날 기뻐하며 찬양하고 있을까? 아니면 용기를 못 내어서 가만히 있을까?’ 하나님은 00가 찬양을 안 한다고 절대 싫어하시지 않으세요. 다만 용기를 내어 기쁘게 찬양할 때까지 사랑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세요. 우리 조금만 용기 내어서 하나님 찬양할까요?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는데... 어때? 용기 내 볼 수 있겠어요?” 라고 묻자 아이는 “네”라고 대답했고 함께 기도하였다. 이러한 동일한 대화를 쌍둥이 모두에게 각자 이야기하였다. 

아직도 예배실에서는 아이들의 찬양소리와 폴짝 폴짝 뛰는 율동 때문에 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찬양 중에 살짝 뒤로 가서 팔을 들어 율동을 도와주다가 손을 자연스럽게 놓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뒤에서 잡아 준 내 손이 못 따라갈 정도로 쌍둥이 모두 율동을 너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이 찬양 드리던 선생님들도 놀라셔서 서로 놀라신 얼굴로 바라보며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셨다. 그리고 쌍둥이들은 언제 율동을 외웠는지 하고 있는 찬양의 율동 순서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는데 너무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와 함께 하시고 지혜 주셔서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아이들의 찬양을 받으시는 주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작년 이 맘 때쯤의 이 경험이 나에겐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번 달, 새이레에서는 1박 2일 ‘새이레 쑥쑥이 자람이 캠프’가 열렸다. 창조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느끼고 감사드리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땀에 젖은 아이들을 씻기는 시간이었다. 작년과 달리 혼자서도 잘 씻고, 스스로 하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서툴지만 스스로 하려는 작은 손들이 사랑스러웠다. 새 옷과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마지막으로 내가 발을 씻겨주었다. 물론, 혼자 씻을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특별히 그 날 만큼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발을 씻겨주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한산성을 정복한 수고한 발을 따뜻한 물에 적신 후, 간지럼을 태우고 발에 비누칠을 해 씻겨주었다. 아이들은 간지럽다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아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활짝 지어졌다. 

“선생님이 왜 발을 씻겨주실까요?”
“더러워서요.”
“예수님도 예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어요. 그 때는 맨발로 다니기도 하고 신발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발이 많이 더러웠을텐데 예수님은 사랑의 마음으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셨어요. 선생님도 예수님처럼 00의 발을 씻겨주는 거예요. 나중에 00도 커서 어른이 되더라도 낮고 겸손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의 더럽고 약한 부분도 만져주며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해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특별히 기독교대안학교의 교사로서 하나님과 학생들의 통로로 선다는 두려움이 정말 크다. 더욱이 세상의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기독교세계관으로 예수님처럼 삶을 통해 가르친다는 것은 더욱이 모든 것에서 조심스러워지고, 신중해지며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기독교 교사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매일 매일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교육을 하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와 세상의 명예와 권세, 권력은 기독교사로 서는 데 필요하지 않다. 아니, 때로는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세상의 지식이 아닌 말씀에 비춰진 지식,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학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귀한 비전들이 교사로 서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다. 특히 취학 전 영ㆍ유아가 중요한 이유는 그릇된 행동이 빠른 시일에 바뀔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세계관을 형성하여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하며 사랑과 정성의 손이 많이 가는 연령대이기 때문에 내가 힘들고 지쳐도 돌아보아야하며 손을 뻗쳐야 한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유아들이 직접 써 온 편지는 너무 사랑스럽고 감사하다.“선생님 감사해요. 사랑해요”가 대부분의 내용이지만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로부터 감사를 받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과 부족한 나를 교사로 불러주시고 귀한 하나님의 일꾼들을 양성하는 도구로 사용하심에 그리고 그 통로로 새이레학교를 세워주시고 함께 하심에 감사드릴 뿐이다. 기독교세계관으로 배우기를 힘쓰는 귀한 모든 학생들과 말씀 앞에 바로 선 교육과 말씀을 삶으로 가르치는 모든 교육자들을 축복하며 가족과 기독교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5월을 마무리하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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