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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요 편지] 아버지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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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환 동화작가  

완섭씨는 졸음에 겨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른 손을 이끌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왔다. 너절한 행색은 한눈에 봐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완섭씨 코를 찔렀다. 완섭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추 먹은 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빠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완섭씨는 그제야 그들 부녀가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는 없었다. 완섭씨가 머뭇거리는 사이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어, 아저씨! 순댓국 두 그릇 주세요.” “얘야, 이리 좀 와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완섭씨는 아이를 불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 없구나. 오늘은 예약손님들이 많아서 말이야.” 아이의 낯빛이 시무룩해졌다. “아저씨, 빨리 먹고 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주머니를 뒤졌다. 아이는 천 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가야 한다. 그리고 말이다, 저쪽 끝으로 가서 앉거라. 거긴 다른 손님들이 앉을 자리니까.” “예.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이는 아빠를 일으켜 화장실 바로 앞자리로 갔다.

잠시 후 완섭씨는 순댓국 두 그릇을 갖다 주었다. 완섭씨는 계산대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줄게.”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통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아이는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아빠 그릇에 가득 담아 주었다. 아이는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응, 알았어. 순영이 너도 어서 먹어라. 어제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나만 못 먹었나 뭐.…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어. 어서 밥 떠, 아빠. 내가 김치 올려줄게.” 아빠는 국밥 한 수저를 떴다. 아빠의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여 있었다. 완섭씨는 마음이 뭉클했다. 음식을 먹고 나서, 아이는 아빠 손을 끌고 완섭씨에게 다가왔다. 아이는 계산대 위에 천 원짜리 여러 장과 한 움큼의 동전을 올려놓았다. 

“얘야, 그럴 필요 없다. 식사 값은 이천 원이면 되거든. 아침이라 재료가 준비되지 않아서 국밥에 넣어야 할 게 많이 빠졌어.” 완섭씨는 천 원짜리 몇 장을 아이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니다. 아까는 내가 미안했다.” 완섭씨는 아이 주머니에 사탕 한 움큼을 넣어주었다. “잘 가라.” “안녕히 계세요.” 완섭씨는 아이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완섭씨 눈가에 눈물이 어룽어룽 맺혀 있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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