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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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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장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크리스천들은 최근의 광우병 쇠고기 사태와 촛불시위 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한 손은 반드시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세상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최근의 광우병 사태와 촛불시위, 정부의 총체적인 부실, 고유가 및 민생 불안 등은 설교자로서는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시청 앞 광장의 밤하늘이 촛불로 타올랐는 데도 설교자가 이에 아랑곳 없이 별천지의 주제로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직무유기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목회자뿐 아니라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지금 사태를 보아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문제로 인해서 다시 한국교회가 세상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해서 기독교는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행동 하나 하나, 그리고 지도급 목회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세상에 그대로 노출되는 시대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한 크리스천의 발언은 그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교회를 대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변한다. 세상이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의 행동 준칙은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 '나 자신'이 고위공직자이거나, 교회 지도자, 각 방면의 권위자일 경우에는 더욱 준엄하고 가차없이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적용해야 한다. 파급되는 영향력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대통령이시라면, 예수님이 촛불 시위대에 계셨더라면, 예수님이 나라면…. 이 같은 점을 늘 생각하면 무언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 준거 기준에 따라 예수님이 분명히 촛불시위를 하셨을 것 같으면 광장에 나가서 촛불을 들면 된다. 그 반대일 경우에는 시대흐름과 상관없이 시위를 막아야 한다. 예수님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감없이 '사탄' 발언을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행동과 발언 전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예상 행동과 예상 발언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예수님이 판단 근거가 되지 않는 모든 행동에는 자신의 숨은 목적이 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본회퍼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세 가지를 하나님께 위탁했다고 말했다. 그 세 가지는 생명과 업적과 명예였다. 예수님의 준거 기준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였을 것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그는 세 가지를 내려놓았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나 크리스천이라고 밝히는 여야 국회의원들, 일반 성도들 모두 이 세 가지를 내려놓고 판단해야 한다. 이것들을 먼저 내려놓고 겸손히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난마같이 얽힌 모든 문제의 해답이 보일 수 있을지 모른다.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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