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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요 편지] 기러기 키우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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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편지] 기러기 키우는 할아버지 

- 이철환 동화작가  

오래 전, 원주 치악산 아래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기러기 다섯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기러기 우리는 지붕도 없이 허술했다. 신기하게도 기러기들은 날아가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기러기들이 날아가지 않네요. 기러기는 하늘 높이 나는 새잖아요." "이놈들은 야생 기러기들하고는 좀 달라. 물이 없으면 날아오를 수가 없지. 이놈들은 헬리콥터 마냥 제자리 날기는 못하거든. 날아오르려면 힘차게 걷어찰 물길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 물이 있나. 비행기는 제자리에서 못 뜨잖아. 그와 똑같은 이치야."

"할아버지, 이제껏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았나요?" "웬걸. 몇 년 전에는 일곱 마리가 모조리 내뺐어." "어떻게 도망갔지요?" "여름 장마 때였어. 며칠 동안 작달비가 사납게 퍼부었지. 이놈들 사는 마당에 커다란 물웅덩이가 생겼던 거야. 아무런 눈치도 못 채고 자고 일어나 보니 물웅덩이 걷어차고 우리 밖으로 모두 내빼버렸어. 설마 했지. 이놈들이 자기들 사는 땅을 발로 깊숙이 후벼 파 놓은 줄 누가 알았겄어. 비가 퍼부어대니 땅 패인 곳에 물이 고일 수밖에……. 보기에는 허술해 보여도 이놈들 궁리가 보통이 아녀. 자식처럼 키우던 놈들 모두 떠나고 나서 어찌나 허망했는지 몰라."

할아버지는 쓸쓸하게 웃었다. "할아버지, 기러기 우리 위에다 지붕을 만드시면 되잖아요." "난들 그 방법을 몰랐겄어. 자식 같은 놈들에게 그럴 수가 없었지. 하늘은 기러기들의 밥이야. 날짐승에게 하늘을 뺏는 건, 날개를 분지르는 일과 매 한 가지거든. 그래서 궁리 끝에 이놈들 마당에 볏짚을 잔뜩 깔아놓은 게야. 땅 못 파게 하려구. 지 아무리 비가 와도 이제는 물이야 고이지 않겄지. 이래도 내빼면 덕 쌓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구. 하여간에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 있는 것들 함부로 대하면 못써. 세상 돌아가는 꼴 좀 보라구. 가난하다고, 힘 없다고, 무지랭이라고 사람들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니까 세상 꼴이 이렇게 되는 거야. 사람 소중한 줄 알아야 정치구 밥이구 되는 거여. 입 봉허고 있으니께 암껏도 모르는 중 알지만, 그게 아니란 말이지. 눈물나게 한 사람은 금세 잊어도, 눈물 흘린 사람은 당한 세월을 잊지 못하는 법이거든." 할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도망갔던 기러기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럴 리야 있겄어. 싫다고 내뺀 놈들인데. 자식들 크면 둥지 떠나듯 그놈들도 떠났을 테지, 뭐……." 할아버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가에 보랏빛 쑥부쟁이가 다복다복 피어 있었다. 하늘은 기러기들의 밥이라고, 새에게 하늘을 뺏는 건 날개를 꺾는 거라고, 가난하다고, 힘 없다고, 무지랭이라고, 사람을 업신여기면 안 된다고, 하셨던 할아버지 말씀을 생각하며 쑥부쟁이 꽃길을 걸어 나왔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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