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인간의 모자람

첨부 1


인간의 모자람  

- 황형택 강북제일교회 목사  


우리는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가? 최고의 권력을 쥐어도 여전히 지혜가 모자라는 인간에 불과하지 않는가? 아무리 넉넉한 부유함에 가슴 펴고 사는 듯해도 영혼의 메마름을 해갈시킬 수 없어 갈급함으로 몸부림치지 않는가? 아무리 누군가의 눈에 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되돌아서 가는 길목에서는 깊은 외로움과 채울 수 없는 공허감으로 어느새 방황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되고 말지는 않는가?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는 오이디푸스와 눈 먼 예언자 텔레이시아스가 만났을 때의 장면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눈먼 예언자 텔레이시아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눈이 있는 오이디푸스는 보지 못하고, 오히려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진 이는 눈 먼 텔레이시아스이다. 대단한 역설 아닌가? 

볼 눈이 있는데도, 아니 지금 멀쩡한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데도 진정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눈이 있음에도 보지 못하는 자와 눈이 없어 비로소 볼 수 있는 자를 묘하게 대비시킨 것이다. 마침내 오이디푸스는 눈 뜨고 있어도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눈을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로 찔러 버린다. 

그렇다. 있다고 전부가 아니다. 갖추고 있다고 모자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넉넉하다고 영혼까지 만족할 만한 인생일 것이라 단언할 수 없다. 눈 뜨고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고 있다고 제대로 보는 것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리고 산다고 그 인생이 마음 푸근한 행복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희랍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어원의 의미가 "앞서서 생각한다"는 뜻이다. 제우스마저도 앞날을 내다보는 그의 예지력을 두려워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가? 그런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결박당한 후 "나 자신을 구출할 만한 지혜조차 없음"을 한탄했다는 것 말이다. 

인간은 부족하다. 아무리 탁월하다고 자신만만해도 자신을 구출할 만한 지혜가 모자란다.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 권력으로 안된다. 부유함으로 되지 않는다. 힘과 부로 결코 구원을 살 수 없다. 그래서 구원하시는 예수 그 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용돌이치며 밀려오는 성령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필요하다. 

요한 계시록의 그 탁월한 찬송 소리를 기억하는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여러분도 이렇게 외쳐 보고 싶지 않는가? 권력과 부유함과 자신만만함의 뒤편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공허감을 향하여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