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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당신과 나는 들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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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는 들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철환 동화작가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김밥을 좋아하시는지요. 나는 김밥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김밥을 좋아하는 건, 사람들 가슴속에 소풍이라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김밥을 만들 때 김밥 속에는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갑니다. 치자색 단무지와 계란, 분홍색 햄, 초록색 시금치나 오이, 주황색 당근…. 형형색색의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 김밥 속은 앞마당의 꽃밭처럼 화려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김밥 속이 화려해지면 화려해질수록 김밥은 빨리 상해 버린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사람 사는 것도 꼭 김밥 속 같습니다. 삶이 화려해질수록 그 사람의 영혼도 빨리 상해 버리니까요. 화려해지고 높은 곳에 오를수록 사람들은 낮아질까 봐, 초라해질까 봐 늘 불안해하니까요.

당신과 나는 항상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만 받겠다고 생각하지도 말고요. 꿈이 너무 많은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요. 불 하나를 켜면 별 하나가 멀어지니까요. 꿈 때문에 당신이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위해 나도 조용히 불을 끄겠습니다. 당신과 나는 들꽃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꽃을 피워야만 사랑받는 장미도 되지 말고, 언제 꺾일지 몰라 불안해하는 백합도 되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없이 피고 지는 들꽃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아름답게 흔들릴 줄 아는 들꽃.

아무 곳에나 피어나지만 아무렇게나 살아가지 않는 그런 들꽃 말입니다. 제비꽃, 달맞이꽃, 패랭이꽃, 자운영꽃, 아기별꽃, 양지꽃, 질경이꽃, 바람꽃, 은방울꽃…. 들판 가득 엄마의 눈물처럼 피어 있는 이 꽃들은 여치 울음소리,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제 영혼의 키를 키울 줄 아는 들꽃입니다. 보슬보슬한 흙 위에 누워 밤하늘 북두칠성을 바라보는 눈빛 맑은 들꽃입니다.

여행 중에 철로에 피어 있는 냉이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냉이꽃은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 한가운데 피어 있었습니다. 꽃 대궁 가지가지마다 하얀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냉이꽃이 보고 싶어서, 냉이꽃이 보고 싶어서, 기차는 하루에도 여러 번 그곳을 다녀갔습니다. 기차를 달리게 하는 힘은 냉이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어떤 꽃이 되고 싶으신지요. 당신 가슴속 앓이앓이가 아름다운 꽃이 될 거라 믿겠습니다. 당신과 나, 강물보다 짧은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눈비 뿌리는 날에도 당신이 부디 따스운 밥처럼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나, 당신 곁에 늘 머물겠습니다. 가슴으로, 눈빛으로, 소리 없이, 환하게.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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