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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도의 순간 안식’을 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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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순간 안식’을 누려라

- 오정현 목사 (사랑의교회)


분주함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다. 지난 사역을 돌아보면 분주하고 피곤할 때 영적으로 어려웠던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삶이 너무 바쁘거나 분주할수록 우리의 영은 약화될 수가 있는 것이다.

바쁨은 신앙 생활의 중심축인 기도 시간에 치명적이다. 기도 시간이 부족하면 영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그 약함을 가장하고 위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너무 분주한 삶을 살다보면 기도가 약해지게 되고, 기도가 약해지면 허세를 부리게 되고, 더 큰 가면을 쓰는 신앙적인 위선 때문에 결국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영적 토대가 부실하게 되는 영적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삶은 지금 같은 세속주의의 광풍을 이겨낼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로빈슨 크루소처럼 절해고도에 있지 않는 한,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쁨과 피곤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바쁨과 피곤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하는 길은 고도의 순간 안식을 누리는 데 있다. 예수님은 너무나 큰 사역의 짐으로 쉬지 못하시고, 그 피곤이 얼마나 깊었던지 큰 풍랑으로 요동치는 배 안에서도 곤히 주무실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사역의 짐을 지고 그토록 바쁘신 중에도 동트기 전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나가 기도로 하루의 문을 여셨다. 피곤 때문에 1시간이라도 더 자야 하는 상황이지만 주님은 오히려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영교를 통한 고도의 순간 안식을 취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는 기도가 쉼이 되었고, 사역을 이끄는 원천이 된 것이다.

이달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됐다. 진정한 쉼은 산이나 바닷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영혼이 쉼을 얻지 못하면 육신이 아무리 쉬어도 진정한 쉼을 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여, 당신 앞에 무릎을 꿇기 전까지 내 마음에는 참된 쉼이 없었습니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휴식은 무엇보다도 영혼에 대한 깊은 해갈이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쉼 없이는 참된 쉼을 누릴 수 없다. 얄팍한 쉼은 오히려 피곤을 가중시킬 수 있다. 육신이 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이 육신을 지배할 때 비로소 쉼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들리는 안식에 대한 갈망과 참된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진실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고 기웃거리면서 세월을 보내는 관광객 같은 삶이 아니라 인생의 소명과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영적 순례자의 삶이다. 우리 믿는 자들이 영적인 회복과 재충전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세상과 같지 않다.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 영적 동지들과의 만남, 그리고 자연과의 깊은 교감 등이 우리 신앙인들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쉼의 자리다.

기도는 세상의 기름기로 비대해진 우리의 영혼을 건강 체질로 바꾸는 가장 좋은 영적 다이어트의 시간이기도 한다. 몸과 마음이 처지기 쉬운 여름이지만, 새벽에 일어나는 기도의 발걸음을 통해서 영적 체질을 개선하고 예수님처럼 기도 속에서 ‘고도의 안식’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의 영적 계기판은 날로 충만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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