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독수리의 눈과 마라토너의 긴 호흡으로

첨부 1


독수리의 눈과 마라토너의 긴 호흡으로 

- 오정현 목사 (사랑의교회)


고유가, 고물가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정마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지금 국가나 개인이나 그 면면에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답답증이 묻어나고 있다. 이것이 만성화되면 자칫 사회적인 우울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에 나라의 영적인 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의 비상한 자세와 성도의 기도가 더욱 절실한 때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고, 삶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인생의 실상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인생길은 비단길이 아니라 지뢰밭이다. 땅 밑에 은밀하게 숨겨진 작은 금속에 불과하지만, 아주 작은 압력에도 치명상을 주는 것이 지뢰이다. 인생의 행로 아래에는 삶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삶이 피곤한 것은 혹시나 밟을지도 모를 지뢰를 피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노심초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를 가리켜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는" 슬픈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삶의 모든 장애와 고통마저 감사와 기쁨으로 거듭나게 하는 힘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가 그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에 우리의 눈을 뜬다면, 인생사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 자체보다는 그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임을 알 수 있다. 즉물적(卽物的)이고, 즉시적(卽視的)이며, 즉각적(卽刻的)인 것에 중독되어 심한 조급증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이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사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독수리의 눈과 마라토너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 독수리처럼 전체를 보는 눈이 인생살이의 돛이 된다면, 마라토너의 긴호흡은 삶의 균형추와 같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자마자 전력질주한다면, 그 사람은 마라토너가 아니다. 마라토너의 머리에는 항상 42.195㎞ 지점에 있는 피날레 선이 박혀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삶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고, 상황이 어려울수록 독수리의 눈과 마라토너의 호흡으로 삶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을 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세가 더욱 요구된다. 필립 얀시는 이를 가리켜 "그리스도인은 물의 세계와 육지의 세계에서 동시에 살아야 하는 양서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천국을 본향으로 두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이 땅에서 성공적으로 삶을 사는 비결은 이 땅에 동화되는 것도 아니며, 생각과 행동이 분리된 이원화된 삶도 아니다.

성경에서 정말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나그네 인생길을 걸어가면서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한 생애를 살았던 사람이다. 믿음의 조상으로 일컫는 아브라함, 노예의 신분으로 세계 최대의 제국을 지배했던 요셉, 성경에서 가장 온전한 삶의 보여주고 있는 다니엘,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였던 바울의 삶은 모두가 나그네와 같은 여정의 삶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성공적으로 이 땅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어떻게 이들은 나그네의 신분을 가지면서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영적으로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그들 모두가 마주하는 일마다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독수리의 눈과 마라토너의 긴 호흡을 가지고 절박한 인생사를 해석하고, 믿음으로 신앙의 삶을 살았던 것에 그 해답이 있다. 이것이 세상이 어렵고 삶이 실타래처럼 엉켜보일수록, 설사 세상의 광풍에 인생의 나뭇가지는 흔들릴 수 있지만, 신앙의 뿌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기 위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태도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