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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멍멍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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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풀  

- 이철환 (동화작가)


햇볕 반짝이는 뜰에 앉아 나는 가끔 어린 딸아이와 소꿉놀이를 합니다. 딸아이는 나에게 밥상을 차려줍니다. 딸아이가 해준 종이밥을 나는 냠냠냠 맛있게 먹습니다. 빨간 뚝새풀을 뜯어 고춧가루를 만들고 명아주풀을 쫑쫑 썰어 맛있게 국도 끓입니다. 손가락으로 치카치카 칫솔질도 하고 장난감 컵에 물을 담아 오글오글 퉤도 합니다. 나를 닮지 않아 딸아이의 기억력은 참 좋습니다.

한번 가르쳐준 꽃의 이름이나 곤충의 이름을 딸아이는 좀처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딸아이는 저와 함께 산길 걷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딸아이를 앞장세우고 산길을 걷다 보면 많은 아이를 만납니다. 하늘소를 만나고 땡땡이옷을 입은 빠알간 무당벌레도 만납니다. 고추잠자리, 풀무치, 달개비꽃, 할미꽃, 산수유나무, 조팝나무, 딱따구리, 멧새, 박새, 꾀꼬리….

이 아이들 이름을 딸아이에게 하나하나 가르쳐줍니다. 궁둥이를 딸막딸막거리며 코딱지풀 위에 앉아 있는 나비나 잠자리를 잡아주기도 합니다. "살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이 아이들에게 물어보렴. 이 아이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줄 거야." 딸아이 아는 듯 모르는 듯 고개만 갸웃거립니다. 하루는 딸아이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뒷산에 갔더랬습니다. 졸참나무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 강아지풀이 무덕무덕 피어 있었습니다. 내가 딸아이에게 꽃과 나무 이름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아내도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뽐내고 싶어서 딸아이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이 풀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빠가 가르쳐줬잖아." 기억력이 좋은 아이라 거뜬히 맞출 줄 알았습니다. 아이는 강아지풀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잘 생각해 봐. 이 풀이 뭐처럼 생겼어?" "아! 알았다." "뭔데?" "응- 멍멍이풀." "켁…."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내는 옆에서 킥킥거렸습니다. "맞다. 맞아. 멍멍이풀. 너 정말 똑똑하구나." 나는 호들갑을 떨며 딸아이를 안아주었습니다. 조롱박 같은 얼굴에 쪽쪽쪽 뽀뽀도 해주었습니다.

길에서 만난 강아지에게 "안녕" 인사를 하면, 강아지는 "멍멍"하고 인사를 하니까 멍멍이풀이 더 맞습니다. 강아지풀이면 어떻고, 멍멍이풀이면 어떻습니까. 개풀이라고 해도 틀린 건 아닙니다. 어차피 사람들이 붙여 놓은 이름일 뿐이니까요. 어린 아이들만큼 훌륭한 시인은 없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작은 것 안에 큰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풀벌레처럼 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딸아이에게 꽃과 나무와 곤충과 새 이름을 가르쳐줄 때마다 아이 마음은 한 뼘씩 자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거닐며 내 마음도 한 뼘씩 자랐습니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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