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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본질에 충실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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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충실한 삶  

- 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오래 전 남미로 이민간 친구가 모처럼 고향을 찾아 왔다. 20년 넘는 세월을 낯선 외국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온 그는 고향의 친구들보다 더 나이든 모습을 하고 그간의 간곤한 삶을 이야기했다. 그의 지난 이야기 가운데 교회 때문에 겪었던 마음고생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했다.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작은 일에도 서로 민감하게 반응했고 여러 종류의 이해관계가 얽혀 편할 날이 없었다. 갈등과 분열이 계속 되었던 지난 세월을 말하면서 그는 '차라리 교회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고 회한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교회가 있어 교민 사회가 불편해지고 서로 갈등이 증폭된다면 이는 분명 뭔가에 문제가 있다. 그 문제의 핵심은 정체성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이며 교회는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 정체성에 충실치 못한 경박함이 문제를 만들게 된다. 여러 해 전 미국의 시사만화 블론디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블론디가 이발소에 갔다. 이발사는 그를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손질하다가 이웃 주민들과 정치인들에 대한 잡담을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귓가에 흘려듣고 있던 그에게 이발사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다니! 그럴 거면 뭐 하러 여기 앉아 있는거요?' 그는 자신의 본질을 잘못 알아도 보통 잘못 안 것이 아니다. 상담학자 콜린스는 우리에게 매일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자기 본질에 충실하라는 취지에서다.

최근 정부의 종교 편향성이 있다하여 불교계가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그간 불교계가 무엇을 불만스러워 했는지 또 지금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그 근본적 특성상 충분히 타종교인들로부터 오해받을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철저한 다종교 사회의 모습을 지닌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의 종교는 타종교인들에게는 그 자체로 부담스럽고 경계의 대상이기 마련이다. 공직자들이 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처신했다면 신중치 못하였고, 고의로 한 일이면 무모하기 짝이 없다.

만약 고위층의 눈에 들기 위해 일부 공직자들이 종교 편향적 처신을 했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만약 진정으로 교회를 돕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자기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 누구보다 청렴결백해야 하고 뛰어난 감각과 능력으로 직무에 임해 국가이익에 크게 기여해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눈물 흘리는 백성 사랑의 뜨거운 가슴으로 직무에 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공직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일이며 교회를 위하는 일이다. 정부가 발행하는 지도에 특정 종교시설을 모두 삭제하는 등의 이상한 실수는 오히려 교회와 대통령 모두에게 큰 부담만 안기게 된다. 본질에 충실하고 자기 정체성 구현에 전력해야 오해도 없고 저항도 줄어들게 됨을 인식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타종교인들에게도 공직자가 종교 편향적 자세로 공무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면 부당함을 지적해야 마땅하나 그 개인의 신앙은 존중해야 함이 헌법정신이며 민주사회의 근본임을 인정하기를 기대하고 싶다. 더 나아가 종교 간의 이해다툼을 지켜보는 비종교인들의 시각도 의식해서 종교가 마치 세속적 이해집단으로 비추어지는 이 불편한 일들을 속히 종결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원래 종교가 사랑과 포용으로 화합을 만들고 평화로운 사회건설에 기여함이 본래의 사회적 기능임을 우리가 다 공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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