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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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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으며  

- 손달익 목사 (서문교회) 
 

다시 종교개혁 기념일을 앞두게 됐다. 루터와 칼뱅에 의해 주도된 교회개혁운동이 역사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전 세계의 역사 흐름을 바꾸어 놓은 지 벌써 5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새로운 교회가 탄생했고 세상의 문화적 지평도 바뀌었고 봉건체제가 붕괴되고 자유로운 민주사회가 건설되기도 했다. 실로 당시의 개혁자들이 상상하고 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파장과 변화가 있었다. 실로 성공한 혁명이었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날을 맞이할 때마다 아직도 교회개혁의 미진함을 절감하고 긴급하고 신속한 개혁의 필요성을 외치는 많은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 소리들에 대하여 많은 부분 공감하기도 한다. 왜일까? 세상은 종교개혁의 흐름 속에서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혁명적 변화가 있었음을 말하는데 정작 교회는 개혁의 미진을 느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이유가 우리가 지나치게 교리적 회복에 개혁의 의미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개혁의 초점은 진리를 가리우고 거짓된 논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감추려했던 중세 교회의 교리와 제도의 잘못을 바로잡아 초대교회로부터의 사도적 전통을 회복함에 있었고 그 여파로 온 세상의 사회 문화적 격변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치게 교리적 회복에 의미를 집중하고 그 정통성에 집착하다 보면 18세기 정통주의의 과오를 반복할 수 있다. 우리가 오늘의 시점에서 집중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에 걸맞은 교회 사역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초대교회는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주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집을 팔고 밭을 팔아 헌금했고 그 헌금들은 구제와 섬김을 위해 쓰여졌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교회 건축을 위해 집을 팔거나 논밭을 정리해서 헌금하여 교회를 섬기는 신심 깊은 성도들이 있음은 자랑스럽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그런 헌금이 건축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여졌다는 점이 오늘의 우리와 다른 점이다. 물론 건축을 소홀히 하자는 말이거나 건물 무용론은 더욱 아니다. 단지 이토록 많은 오해와 비난이 한국교회를 향해 주어진 적이 없었던 혹독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칭송 받는 교회'로 회복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개혁할 수밖에 없다면 이제는 이웃을 섬기기 위해 논밭을 정리하는 결단이 필요함을 절감하기에 하는 말이다. 

개혁의 과제는 그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교리의 그릇됨과 내부의 부패가 극심했던 중세 교회 개혁의 과제가 진리를 회복하고 교회제도를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면 오늘 우리는 세상을 섬기는 교회상의 회복이 시급하다.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잘 기억한다. 중세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층민들에게 짐 지우고 약하고 무능한 사람들이 유능한 자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사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섬김 공동체이다. 먼저 은혜를 입은 자들이, 먼저 교육과 물질의 혜택을 입은 자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섬기는 사회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섬김의 본을 실천적 모습으로 제시하여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은 교리의 회복과 더불어 사역 내용의 회복도 이루어져야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이 일을 성취하여 진정한 개혁의 후예다운 모습을 우리 모두 함께 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내친 김에 '칭송받는 교회'의 모습까지 회복하여 옛 원형적 교회를 닮은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이 가을에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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