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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씨비(sibi)가 아닌 논씨비(non sibi)로 오신 성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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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비(sibi)가 아닌 논씨비(non sibi)로 오신 성탄


어떤 사람이 교회에 기도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미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만원만 주세요. 십만원만 주세요" 

너무 큰 소리로 기도하기 때문에 뒤에 있는 그에게까지 들려 왔습니다. 기도는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반복되었습니다. 기도하다 말고 이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 뒤로 가서 지갑에서 10만원 권 수표를 꺼내 그 사람의 펴진 손에 조준하여 던져 주었습니다. 다행이 십만원권 수표는 그 사람의 손에 가볍게 떨어졌습니다. 기도하던 사람은 깜짝 놀랐습니다. 눈은 감은 채 계속하여 "십만원만 주세요. 십만원만 주세요."라고 입은 부르짖으면서 손으로는 떨어진 것을 만져 보았습니다.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살짝 떠서 손위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십만원 수표였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할렐루야"를 외치며 나갔습니다. 

그 사람이 나간 후 그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제 기도에만 집중해 주십시요."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사람 살아가는 모습 중의 하나입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면 가끔 아이들이 "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자기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자기애가 있어야 인간은 이 땅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로 변하면 매사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고 불편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독일에서 100만 부가 팔리고 유럽 14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요제프 키르쉬너가 지은 "이기주의자로 살아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이기주의자다."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으니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남들을 배려하라? '남을 도와야 너도 도움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미루어라' 등의 격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들을 복종시키려는 사람들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우선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항상 거리낌없이 '다른 사람이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대신 '그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는 것입니다. "항상 남들만 배려하는 대신, 남들을 나에게 익숙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보다 다른 누구를 더 존경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현실적이고 현명한 것 같지만 인간을 동물적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물은 본능에 의해 살아갑니다. 만약 인간도 본능에 의해서만 살아간다면 짐승같은 인간, 짐승같은 세상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양심이 있고 이성이 있습니다. 이성과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인간의 삶은 질서가 있게 되는 것이고 힘에 의한 약육강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이성에 의한 문명과 약자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물적인 본능만 난무한 절제되지 않은 이기주의는 결코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없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기주의를 논리적 이기주의, 미학적 이기주의, 도덕적 이기주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논리적 이기주의란 자기의 판단은 언제나 옳다고 하는 생각이고 미학적 이기주의란 자기의 느낌을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도덕적 이기주의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선이고 자기에게 해가 되면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러한 이기주의는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극단적 이기주의는 결국 자신의 이성, 감성, 의지를 절대화하여 신의 자리에까지 자신이 앉고 맙니다.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우리 뒷마당에는 안된다(Not in my back yard)'는 님비(nimby) 신드롬, '제발 우리 집 앞 마당에(Please in my front yard)'라는 핌피(pimfy) 신드롬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봅니다.

가족애나 향토애는 좋지만 극단적인 가족 이기주의나 집단적 이기주의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타주의를 잠재워 보다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내지 못하게 합니다. 가장 이기주의를 벗어나야 할 종교 마저 이기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교회마저도 이기주의 높은 바벨탑을 쌓고 춤을 추는 것을 종종 봅니다. 

일부이지만 교계의 유명인이 된 사람들이 바로 옆에는 쓰러져 가는 교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성한 식욕으로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고래처럼 자본과 종교적 인기의 힘으로 자기 교회 배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신앙인의 삶이란 본능이나 이성, 양심의 차원 수준이 아닙니다. 이것들을 초월한 믿음의 차원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롬 14:23)"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중심에는 바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씨비(sibi)가 아니라 "자기를 위하지 않는다"(not for self)는 뜻을 가진 논 씨비(non sibi)로 생명을 바쳐 섬기고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신앙을 갖는 다는 것은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삶, 하나님을 위한 삶으로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성탄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백화점의 마케팅 수단이 아닙니다. 논 씨비로 오신 예수님을 좇아가는 삶이고, 높은 것 때문에 자랑이 아니라 그분 때문에 감수하는 고난이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 열린편지(김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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