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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망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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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오늘처럼 한 해의 끝자락에 서게 되면, 만족감이나 성취감보다는 벌써 시간을 다했다는 허탈감과 허전함을 가지는 것이 허물 많은 인간의 인지상정이다. 새해 첫날에 기대감으로 받은 일년이라는 시간상자 속의 마음 설레게 했던 그 많은 시간들은 찾아볼 수가 없고 인생의 주름과 후회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현실의 무게로 허리를 펼 수 없을 지경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세계 리더십의 전환을 알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앵글로색슨의 백인과 서구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이 약화되고, 반면에 아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의 도래를 맞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서구중심적 영향력의 쇠퇴와 맞물려 21세기 들어 서구 복음주의의 하향을 우려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국 교회가 세속주의에 대한 복음의 방파제로서의 역사적 소명을 인식하고, 아시아에서 복음의 키잡이로서 명실상부한 향도(嚮導)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시아 기독교 공동체에 주어진 사명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자각이 급선무요, 한국 교회가 구심점이 되어 중국 교회와 북한 교회 그리고 일본 교회와 협력하는데 모든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일년 칼럼을 쓰는 동안 늘 사람을 생각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내 삶의 동인(動因)이요 기쁨과 슬픔의 원천이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사회의 정신을 앗아갈 때에도 보려고 했던 것은 사건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했던 것은 한 주간 동안 마음 속에 각양각색으로 투영된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울거나 웃는 사람들, 차갑거나 뜨거운 사람들, 절망하거나 소망하는 사람들, 버려지거나 사랑받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요, 사람이 해답이다. 인생의 비상구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방식에 달렸다.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주님의 시선이 우리의 모범이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하셨고, 분노하셨으며, 슬퍼하셨고 괴로워하셨다. 그러나 항상 그 중심에는 연민과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인격은 사람을 이해하는 만큼만 깊어질 수 있는데, 예수님의 인격이 온전하였던 것은 한편으로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온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역을 하면서 늘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과 견해를 달리 한다는 이유로 기독교계 내에서조차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앙인은 예수님처럼 사람을 이해하는 차원과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마땅히 생각과 태도도 세상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점점 더 세속주의에 물들어 굳어져가는 기독교 공동체에 다시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길은 진정 예수님처럼 사람을 생각하고 대하는 데 있다. 

칼럼을 쓰면서 격정과 눈물, 통한과 기도가 있었다. 민족을 생각할 때 흥분과 슬픔이, 우리 사회를 보면서 감사와 안타까움이 만조(滿朝)처럼 채워졌다. 언제나 격동하듯 이 사회는 사변(事變)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우리의 마음을 애닯게 하지만 어찌하든지 오매불망 보듬고 아껴서 이 민족이 복음으로 욱일승천하는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글을 쓰면서 품었던 간절한 소망이자 기쁨이었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예수님 때문에 이 민족이 더 행복해지고, 주의 몸된 교회로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지며, 머지않은 장래에 남북이 복음으로 통일되는 푸른 날을 꿈꾸고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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